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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07-02-26

    2007년 2월-<나무를 안아보았나요>

본문

2007년 2월의 독서모임은 생태학자 조안 말루프의 <나무를 안아보았나요>를 읽고 유재경, 김순덕 회원님과 사무국 직원들이 함께 자리하였습니다.

생태학이라는 단어가‘집’을 의미한다는 것을 통해 가장 근원적인 삶터인 자연환경의 소중함과 감사함, 그 안에 존재하는 나 하나의 깨달음과 작은 실천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를 되새겨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유재경 회원님


조안 말루프의 <나무를 안아보았나요>는 소설책이 아닌데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아마 어린 시절 우리집 주위에 내가 올라갈 만한 이렇게 큰 나무가 없었다면 내 삶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라고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연관해서 나무를 자신의 삶에 뗄 수 없는 존재로 여기는 게 무척 독특하면서 감명 깊었다.

작가는 과학자이지만 과학자의 눈이 아닌 나무에 대한 진정한 애정으로 관찰했기에 설명하는 대목 대목에 자비심을 느꼈다.

더불어 존 애보트의 생생함을 느끼게 하는 그림을 실어준 것은 작가의 말대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더해주는 보너스다.

지난달 선정도서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에 이어 자연을 주제로 한 책을 또 읽고 보니 자연에 대한 고마움과 신비감이 더욱 느껴진다.

사람이 지었지만 동식물들의 이름이 너무 예쁘다는 것을 느꼈다. 하늘다람쥐, 짚시나방, 흰색꼬리사슴, 황금방울새, 호랑가시나무, 붉은날개검은지빠귀 등 분명 동식물을 인격체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리라.

더불어 셀 수 없이 많은 생물들에게 다 제 이름이 있다는 것과 아직도 제 이름을 갖지 못한 생물체가 얼마나 있을까 궁금했다.

작가는 나무에 대한 애정에서 그치지 않고 숲의 중요성을 무척 강조했다.

사람들이 경제적 이익의 목적으로만 숲을 가꾸는데 너무 안타까워하면서 자신의 힘을 최대한 쏟아 부어서 숲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는데 정말 눈물겹게 고맙다.

그것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살리는지! 그 일환으로 9.11 추모숲을 만드는 데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나면 작가는 사람과 나무를 동일시하는 생각으로 꽉 차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 같다.

이렇게 좋은 책이 두고두고 읽혔으면 좋겠다.


김순덕 회원님


막연한 이론적 사고에서 이 책을 통한 숲 속 여러 생물 종들의 연결고리를 알고 산을 향하는 내 발걸음은 분명 달라져 있다.

왠지 더 숲속에서의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고,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의식이 깨어 있다. 울창한 숲 속을 걸으면서 행복해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 뿐임이 슬프다는 대목에서 나는 그녀에게 힘내라고 응원을 보내주고 싶었다.

그리고 계속해서‘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고 외치는 것 같은 부분에선 저자가 부처님의 연기법을 알고 있는지, 아니 2500년 전 인도에서 태어난 부처님을 들어보기라도 했는지 정말 묻고 싶었다.

과도한 물질문명 속에서 가장 척박해져 가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과연 우리 모두는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자연 숲의 가치를 우리가 묵과하며 살아가는 그 이유를 정녕 한 번쯤 고뇌한 적 있는지.

이런 답답한 나의 마음을 저자는 9.11 추모숲을 통하여 넌지시 답을 주기도 했다. 마지막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아홉 번째 비가를 소리내어 읊어보며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안녕을 빌어본다.


강희정 간사


책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 책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림이 함께 있어 재미있었다. 본문을 읽다가 그림이 나오면 그림을 보면서 본문내용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본문에 나왔던 이름 어려운 곤충이 이것 이였나? 하면서.


135p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모은 것은 연결되어 있다....”라는 문장이 제일 핵심으로 느껴졌다. 평소 잘 느끼지도 못했던 나무에 대한 고마움이 새삼스레 샘솟아 나는 것도 같았고... 평소 종이를 잘 아껴 쓰지 않던 습관도 반성되었다.

내가 그렇게 써 버린 종이 때문에 희생되었을 나무와 그리고 그 나무와 함께 하는 새들 곤충들 많은 생명들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또 조금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런 마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사라지고 잊어버려져서 예전처럼 아무런 반성이나 미안함 없이 생활할 것이다.

그래서 또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고 뭔가 마음이 무거워 졌다. 책을 읽으며 또 하나 편하지 않았던 건 중간 중간 인용된 릴케의 시 때문이었다.

릴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 등장하는, 윤동주가 존경했던 시인 이라는 정도였다.

아직 나의 독서능력이 많이 부족해서 그런지 아니면 시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그런지 그냥 읽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이해를 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김윤정 과장


처음 이 책의 내용을 접하기 전 쭉 한 번 훓어보면서 눈에 들어오는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다. 개관적이고 통합적인 동양의 사고에 비해 개별적이고 분석적인 서양의 사고는 예술작품(회화)를 통해서도 대별하여 알 수 있다.

200여 년 전에 그려졌다는 애보트의 삽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과 동시에 편안함을 준다. 이토록 정밀하게 그려낼 수 있는 섬세함과 관찰력이 놀랍고, 색채를 입히지 않았음에도 살아있는 듯 생생한 그림들은 목탄으로 그려져서 더욱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그리고 책의 주제가 자연이고 주소재가 나무라는 점에서 우선 책에 대한 편안함이 앞선다.

조안 말루프의 <나무를 안아보았나요>는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하고 흔연하게 읽은 책이다.

그녀의 생 자체가 담겨있는 경험담이어서 진솔하면서도 알찼다.

그녀이기에 쓸 수 있는, 그녀만의 이야기들이 녹아져 있는 이야기들에 심취해 한 숨에 첫 책장을 펼쳐서 밤잠을 떨치고 마지막장을 덮었다.

감동에 벅차 떨리고 코끝이 시큰거렸고 감사의 기도가 절로 중얼거려졌다.

한 사람의 맑음이 이토록 사회를 향기롭게 채울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지극히 높고 순수한 진리의 세계는 하나의 닮은 꼴 모습임을 또한 짐작할 수 있다. 하물며 동양과 서양의 차이쯤이겠는가. 그녀의 글 곳곳에서 여느 글보다 더 지극히 동양적인 진리의 명상체들을 접할 수 있지 않은가.

“나무 위에서 만큼은 나는 온전히 ‘나’ 자신일 수 있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 친구가 보는 ‘나’가 아니라 어떤 신비한 힘에 의해 만들어져 자연이라는 거대한 그물망 안에 던져져 미지의 빈자리를 채우는 온전한 ‘나’말이다.”(38면)


“그래, 나무는 환경을 이루는 한 요소가 아니라 나무 자체가 환경이구나” (45면)


“반드시 필요한 일조차도 자신의 행위 하나 하나가 다른 생명의 안식처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패러독스다. 지구에서 삶을 영위한다는 것 자체가 다른 생명을 담보로 시작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패러독스에 대한 유일한 도덕적 해결책은 우리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우리가 그런 영향력을 미쳤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려고 노력하려는 자세다.

우리는 생태계에 좀 더 예민해지고 관대해지며 그것과 하나가 된다. 아마도 이것은 우리에게 지구라는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서로 복잡하게 얽힌 인연에 따라 ‘제대로 사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 (62면)


"자연은 여러 겹의 비밀 옷을 입고 있는 신비 그 자체다. 하나의 현상 밑에는 항상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세계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또 다른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72면)


“꿈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꿈이 당신을 갖도록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113면)


이 책을 읽는 동안 인드라망의 종처럼 머리 속을 스치며 퍼지는 글이 있어 다시금 되새겨 보고자 책들을 뒤적여보았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옵니다. 그리고 당신이 내린 그 결단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당신에게서 시작하여 수십만의 사람들에게까지 이어지는 가느다란 줄이 있습니다. -앤디 앤드루스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


人(사람)은 보이지만 인(인간)의 間(사이)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보이는 인(사람)은 보이지 않는 간(사이)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 보이지 않는 전체의 그물을 볼 수 있는 지혜가 노자가 가르치고자 하는 도(진리)의 지혜인 것이다. -김용옥 <노자와 21세기>


자연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진리를 보여준다. 이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전 우주와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식물의 정신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