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활동 체험기
(저는 부산대학병원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박차동입니다.
(지금은 피교육자로써) 호스피스 서비스에 대한 체험담을
사실에 100% 리얼하게 접근하여 표현하려 합니다.
그리고 초심에 있었던 제 글월을 기준해서 재구성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정말로 현재의 내가 아는 호스피스의 본질을
1년전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의 존엄성, 의사소통 등등
참 기형학적인 답이 없는 언어에 빠져들면 개인적인 사고가
형성되어 물론 긍정적이고 즐기는 방향인 것은 당연하지만
초심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처음의 저의 체험담을 읽어
가겠습니다.
2007년 4월 본관 10층에서 환자한분과 구덕산 민주공원의
화사한 파스텔풍의 산벚꽃과 싱그러운 연초록의 풍광을 함께
바라보면서 내년 봄에도 햇살 고운날에 함께 보자고 하시곤
이틀후에 돌아오지 않을 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이후 약간의 포장된 거짓말도 약이 된다는 것을 알고 가능한
말도 행동도 우회하고 더디지만 환자와 공감을
가질때까지 노력하고 기다리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계기로 이 자리에 계십니까 ?
저는 본원 호스피스 봉사자 한분을 잘 알기에 그분이
호스피스의 역할과 차후 호스피스가 보편화 될것이라며 그분의
권유로 지금 이렇게 호스피스유니폼을 입게 되었습니다.
호스피스외에도 다른 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호스피스 봉사자야
말로 남은 삶을 몸과 마음이 허락되는 날까지 올인해도
후회없을꺼라 믿습니다.
또한 환자와 가족 그리고 우리 회원님 여러분들도 같은 높이에서
똑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으니 회원님들 내허물 니허물 같이 안고
가입시더, “박수 한번 쳐 주이소” 그리고 30분간인데 가능한
3분정도는 줄이겠습니다.
다시 올곧은 길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린 간혹 환자에게 거절도
당하지만 저번 주만해도 인사를 나누었던 환자분이 갑자기
임종을 맞이할때는 밀려오는 슬픔을 참을수가 없을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먼 여행을 준비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만남은
소중한 사람과 보석처럼 빛나고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즉 호스피스 봉사자는 아름다운 중독의 천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임종을 앞둔 남편을 간병하던 젊은 부인은 남편이 더 이상
자기를 알아보지 못한다며 가슴을 두드리며 애써 눈물을 참는다.
계단으로 가서 여기서 소리내어 실컷 울고 오라고 말하곤 저는
환자분의 수염과 손,발톱을 다듬고 따뜻한 물로 몸을
닦아주었다.
정신이 돌아오면 알수 없는 이름을 부른다.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것 같다. 얼마후 남편은 선종하였고 부인은
모든 호스피스 선생님들이 버팀목이 되어주어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잊지 않을 것이며 성실히
살고 훗날에 자기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복도에서 잘 아는 환자와 재회했는데 그분은
고개숙여 죄송하다며 횡설수설한다. 딸아이가 선생님과
약속한 것을 한가지도 지키지 않고 퇴원후 전혀 스스로 하는 일
없이 모든 것을 누워서 명령만 한다고 한다.
처음 환자분을 만났을때 환자는 “나는 괜찮다며 다른 분에게
가라고 했습니다.” 위암으로 재수술했는데
“그래도 낮은 소리로 사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송정이라고
하였다. 송정등대 밑을 정화활동하러 간적있다고 말을 붙이니
그제서야 먹어면 올린다고 하소연 한다.
알지만 수간호사님께 물어보니 환자분은 먹어야되고 물론
구토할 때 혈혼이 나오면 중단해야 되지만 먹을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라고해서 환자에게 설명하고 1시간의 고투 끝에
물반컵을 정상적으로 먹게 되었고 죽 한그릇을 스스로 배달
주문하여 조금먹였다.
병실의 모든분이 15일만에 곡기가 있는 죽을 먹는다며
맑게 웃으셨다. 욕심 내지말고 조금식 양을 늘리고,
운동을 꾸준히 하시면 퇴원할날이 있을겁니다 라고 말해주었다.
정말 얼마후 퇴원했는데....
재회후 얼마후에 선종하였고 빈소는 너무도 쓸쓸했다.
몇분만 계셨고 부인과 딸아이가 잡은 손을 놓지않고 모든
호스피스님들 고맙다고 말한다.
모녀가 정성을 다했으니 이제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본인과
딸(26세)을 위해서 조금의 세월만 가슴 아파하시고 씩씩하고
지혜롭게 사세요 하니 ”예“하면서도 잡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또 연세가 많으신 노부인은 남편의 선종후 쓸쓸함을 떨치고
자신도 남을 돕고 싶다고 도움을 청해왔습니다.
지금은 저와 함께 노인병원에서 말벗, 식사, 청소, 목욕, 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노부인은 남편과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작은
소임 이지만 나눌수 있어서 지금은 행복하고 나중에 하늘에
있는 남편을 만나면 잘했다고 칭찬 받을 것이라는 말씀에 저도
가슴이 아려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호스피스회원님들은 환자에게 맛사지 목욕 면도 지독한
냄새의 대소변처리 짜증 및 선종무렵의 무서운 모습들 그리고
장례예식도 하시는 회원님들 .....
돈 줄테니 하라고 하면 아마 거절할 겁니다
회원님들 너무 진짜로 찐짜루 저 박차동 존경합니다.
결론은 내 주위분들이 호스피스에 관해 묻고 답하면서 직접
해 보라면 손사례를 칩니다.
시간제약과 엄한 규율등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한다.
우리들은 또 환자와 가족들에게 거절을 당하기도 한다.
많은 이유는 호스피스 서비스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우리가 입실하면 당장 임종을 선고받는 느낌을 가진다고 한다.
나 자신이 간혹 간병인 처럼 느낄때도 있지만 호스피스의
역할을 잘알기에 관계없다.
가능한 호스피스 서비스를 통해 환자와 가족이 편해질수
있도록 우리모두 준비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가 됩시다.
말미에 시 한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제목*길 위에서의 생각 /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