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향기롭게”의 40대 이상 회원들은 많은 봉사활동(맑고 향기로운 반찬나눔,전화 말벗,의류리폼 등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30대 젊은 층들의 활동과 참여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2015년을 맞아 맑고 향기롭게 회원과 길상사 신도의 자녀 중에서 20~30대 청년들을 중심으로 공연관람을 하며 우정을 다지고 향후 봉사활동에도 참여하는 “푸른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공연은 대학로의 연극 중에서 오락 위주의 로맨틱 코미디나 개그가 주가 되는 작품보다는 진지한 주제와 흔히 접하기 힘든 예술성을 갖춘 작품들을 선별해서 관람하려고 합니다. 또한 요즘 대학로의 임대료가 올라 한 나라의 정신문화의 기초이자 중심을 이루는 연극들, 특히 소극장 연극들이 설 자리를 잃고 문을 닫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푸른 모임은 공연관람을 통해 대학로의 소극장을 지원하고자 하는 취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매번 연극만 보는 것은 아니고 때에 따라 대학로 CGV의 무비꼴라주에서 재미와 감동이 있는 영화들도 관람할 예정입니다.
4월25일 토요일 대학로 예술마당 1관에서 서울연극제 출품작인 “6.29가 보낸 예고부고장”을 관람하려고 참가자들을 기다렸습니다. 약속 시간인 3시 30분이 되자 20대 초반의 훤칠한 키에 잘 생긴 김준우님이 첫 번째로 도착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맑고 향기롭게의 회원인데 아들이 연극 보는 것을 좋아하고 앞으로 배우의 꿈을 가지고 있어 소개를 해주셨다고 합니다. 반수 준비를 하고 있어 학원에서 실기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으면 좋겠네요. 다음에는 우정권님을 만날 수 있었지요. 길상사에 왔다가 소식지에 나온 글을 보고 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하고 지역에서의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많아 참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점점 공연시작 시간은 다가오는데 나머지 분들이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다행히 10여분을 남겨놓고 여성 세 분을 차례로 반갑게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대학 4학년생인 정재연님은 말없이 조용하면서도 잘 웃는 분이었습니다. 평소 한 달에 한 번 장애아동들을 위해 쉬운 클래식이나 잘 알려진 대중음악들을 연주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푸른 모임과 잘 어울리는 분이네요.
한 번 들으면 잊지 않을 이름을 가진 장미님도 자리해 주었습니다. 맑고 향기롭게의 회원으로 소식지를 보며 정서적 위로와 따뜻함을 느낀다고 하지요. 길상사나 각 모임에서 봉사활동하시는 회원들의 소식을 들으며 늘 참여하고 싶으셨답니다. 저 멀리서 모델로 보일 정도로 큰 키에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부강윤님이 나타났습니다. 대학시절에 처음으로 길상사를 다니게 되었다는데 다른 단체를 통해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고,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후원을 할 수 있는 푸른 모임이 만들어져 신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4시부터 서울연극제 출품작인 “6.29가 보낸 예고부고장”을 관람했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 중반, 가난한 어부의 아들인 주인공은 오직 출세를 위해 최고 명문이라는 한국대 법대에 들어가 공부한 끝에 사법고시 1차에 합격합니다. 하지만 데모하다 감옥 간 친구들이 풀려나오기 위해 주인공을 데모 주동자라 누명을 씌웁니다. 주인공은 결국 고문을 받고 정신착란에 빠지고 하반신 불구의 몸이 되지요. 꿈 많던 청춘은 허망하게도 20여년의 세월을 그렇게 속절없이 흘려보냅니다. 그 사이 친구들 중 누구는 부모를 잘 둔 덕에 재벌 2세로 흥청망청 살아가고, 누구는 민주화 운동을 훈장삼아 국회의원이 됩니다. 주인공이 좋아했던 친구는 유명한 여배우가 되었지요.
주인공은 친구들에게 예고부고장을 보냅니다. 친구들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지, 그 시절의 잘못을 뉘우치는지 시험해보기로 한 것이지요. 놀랍게도 친구들 모두 그 때의 기억을 너무도 고통스럽게 가슴 한 구석에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인공은 결심합니다. 자신이 오늘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친구들을 용서하고 자신 때문에 세상을 떠난 부모님과 분신자살한 동생 그리고 술집에서 일하며 자신을 뒷바라지 하는 여동생을 진정으로 편안하게 하는 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자신의 안락을 위해 타인의 삶을 이용하고 배신하는 것이 당연해진 세태 속에서 나를 던져가면서까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 일인지, 그리고 그 무모하게 보일 정도로 순수한 주인공의 영혼에 한 동안 흐느끼며 침묵해야만 했습니다.
진한 감동을 간직한 채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처음에는 서로가 어색했지만 차차 연극 본 소감을 나누고 올 한 해 동안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서서히 어색함이 풀리더군요. 다들 이대로 첫 모임을 끝내기에는 아쉽다며 2차를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공식적인 일정은 식사로 마치고 호프집에서 서로의 관심사를 묻고 다트 게임으로 술값내기 게임도 해가며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네이버 밴드에서도 만났지요. 3시 반에 시작된 첫 모임이 9시가 되어서야 끝났습니다. 분위기가 너무 좋은 나머지 단체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다음 모임은 5월 23일 토요일로 오후에 영화를 보기로 했지요. 정확한 일정이 나오면 다시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푸른 모임은 사무국에서 세운 계획대로 움직이는 모임이 아니라 모임의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하면서 만들어가는 모입니다. 아직 참여인원이 다 차지 않았으니 많은 분들의 참가신청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