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기부문화 캠페인
"아름다운 마무리"
4월 결연대상자 이수길 어르신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현인 선생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의 1절 가사 중 일부입니다. 올 초에 한창 인기를 끌었던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 초반부에 가사처럼 흥남부두에서의 애틋함이 절절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1941년생으로 올 해 75세가 되신 이수길 어르신은 문화누리카드를 이용하여 최근 영화 국제시장을 보셨습니다. 이북이 고향인 어르신은 내가 겪은 것과 비슷하게 영화가 그려졌다며 담담히 그 때를 회상하시더군요. 구체적인 가족사를 들려주시진 않았지만 1950년 12월 영화처럼 눈보라가 휘날리고 바람이 차가운 흥남부두에서 어르신은 미국의 수송선 메레디스 빅토리호에 구사일생으로 몸을 싣습니다.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도착한 곳은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였습니다. 그 곳에서 두 달 여를 머물다 식구도, 친척도 없는 적적함에 부산으로 올라오십니다. 먹고 살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해야 하건만 10살에 불과한 아이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도, 전쟁 통에 마땅한 일이라는 것도 없었지요.
그로부터 4년 후인 1954년 7월, 어르신은 부산 초량의 철도기지창에서 사고를 당합니다. 기차에 치였고 다행히 목숨은 구했지만 14살 소년의 오른쪽 무릎 아래 있어야 할 종아리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나 다리를 보신 느낌을 여쭈어보았더니 60년이 넘은 일인데 어떻게 기억하겠냐며 그 당시의 기분을 설명해주기 어렵다고 하시더군요. 또 너무 어릴 때 당한 일이라 별 생각이 없었다고도 하셨습니다. 일생일대의 큰 고통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너무 힘드셔서 그 기억을 지워버리신 것이고,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으신 것이지요.
의지할 곳 없이 혼자 힘으로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던 한 소년은 그렇게 가슴 속 깊은 충격을 받습니다. 그 충격은 한평생을 따라다녀 결혼할 마음을 내지 못하게 했으며 가족의 따뜻함이라는 것은 어르신의 것이 될 수 없었습니다. 사고 이후 부산의 스웨덴 적십자 병원에서 의족을 단 채 2년간 재활 치료를 받고는 다시 세상 밖에 홀로 던져지셨지요. 그 뒤로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을 정하지 못하시고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날품팔이로 세월을 보내십니다. 그러다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고 운 좋게 인정 많으신 사장님을 만나 방음공사 일을 배우게 되셨지요.
이수길 어르신은 동대문 방산시장에서 이름 석 자를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성실함을 인정받으며 20년간 일을 해오셨지요. 가게를 운영할 정도로 크게 성공은 못하셨지만 일을 돕는 두 분의 일당은 늘 먼저 챙겨주고 남은 돈을 가져가셨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바로 어떤 분인지 확연히 알겠더군요.
열심히 사셨건만 세월은 무정했습니다. 3년 전부터 신경쇠약이라는 병이 어르신을 찾아온 것이지요. 몸의 한쪽이 마비가 와 동부시립병원에 갔더니 내려진 진단이었습니다. 혈압약에 당뇨약 복용은 기본이고 잠을 청하기 위해서는 신경안정제를 드셔야 합니다. 치아 4개를 발치했더니 드시는 것도 수월치가 않으시지요. 식사를 잘 하셔야 하건만 수급비 50만원 중에 26만원을 햇빛도 잘 들지 않는 고시원의 방값과 그 외 병원비, 약값을 제하면 제대로 된 식비 마련이 어렵습니다. 많은 분들이 홀로 75년을 살아온 이수길 어르신에게 따뜻한 관심과 정성으로 가족이 되어주시길 기원합니다.
? 후원계좌 : 신한은행 100-013-787953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 다음 희망해 희망서명 : 고시원에서 생활 중인 어르신의 다리가 되어주세요
http://hope.daum.net/donation/detailview.daum?donation_id=109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