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을 보낸 후 달라이 라마를 기다린다.
머문 시간은 짧았지만 여운은 길었습니다.
25년 만의 교황 방문은 한국 사회에 교황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빈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국민의 환호는 대단했습니다. 어느 교황보다 약자를 사랑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4박 5일 방한은 감동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유족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기억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제의에 달린 노란 리본에 감동했고, 실종자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적은 편지에 다시 감동했습니다.
장애인을 껴안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밀양 송전탑 문제나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갈등, 용산 참사와 쌍용차 해고 사태로 여전히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위로해주었습니다. 당신에게 무릎 꿇은 수사와 수녀들을 일으켜 세우는 겸손함과 어렵고 힘든 사회적 약자들을 찾아 낮은 자세로 그들을 보듬고 껴안는 모습에 우리 사회는 감탄하였습니다.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정감 넘치는 모습에 대중은 도리 없이 빠져들었고, 100여 년 전 조선왕조가 모반의 무리로 처형한 124위의 명예 회복을 위한 광화문 한복판의 시복 미사는 거대한 해원(解?)의 한마당이었습니다. 또한,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의 성소이기도 했던 명동성당에서 한반도 화해와 평화를 간절히 구하는 강론이 펼쳐졌습니다. 30년 전 여의도광장에서 100만 명 대미사를 집전한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이후 한국 가톨릭이 급성장했듯, 이번에도 교세가 크게 확장되리라 짐작됩니다. 어느 종교든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성자와 같은 모습을 보일 때 대중들은 열광하게 되고, 그 종교의 위상도 한껏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현재 전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은 두 명입니다.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과 불교의 달라이 라마입니다.
교황은 벌써 세 차례 한국을 방문했지만, 비폭력, 반전, 인권, 평화의 상징인 달라이 라마는 아직도 한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종교와 민족을 초월해 자비와 사랑을 실천해 온 평화주의자입니다. 198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바 있으며, 세계적인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으며 미주, 유럽, 호주는 물론 일본에는 34번이나 방문하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중국의 영향력이 우리나라보다 강한 몽골과 대만까지도 방문했는데 유독 한국만 방문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 가서 김치를 먹어 보고 싶다.”, “팔만대장경을 참배하고 싶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며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14대 달라이 라마는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지금까지 여러 차례 밝혀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부르지 않은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중국의 속국입니까?
세계적인 비폭력?반전?인권?평화 운동가이자 불교 수행자인 달라이 라마에 대해 정부가 입국금지 조치를 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그동안 불교계는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위해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문민정부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이 라마의 입국 불허 방침은 변함이 없습니다. 정부가 외교적 파장을 우려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면, 불교계 차원에서 당당하게 달라이 라마 초청을 공론화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종교가 권력에 대한 굴종, 종교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하기에 ‘관세음보살의 현신’으로 일컬어지는 달라이 라마를 한국에서만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깊게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섯 번에 걸친 공개적인 방한 요청으로 교황 방한을 성사시켰습니다. 또한, 정부 차원의 방한 준비위원회까지 꾸려 광화문 한복판에서 대규모의 종교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종교의 형평성 차원에서나 자주 외교를 위해서라도 정부는 달라이 라마 초청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많은 국민이 바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불교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방한하지 못하는 것은 헌법에도 어긋납니다. 만약 정부가 정치적인 문제로 부담스럽다면 정부 차원이 아닌 불교계가 추진하는 종교인의 초청으로 종교, 문화, 평화의 행사로 진행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최근 불교계 일각에서도 ‘외교적 이유로 세계적 종교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허락하지 않는 것은 한국의 자주성에 반하는 일’이라며 정부에 달라이 라마 방한 허용을 촉구하며 추진위원회를 꾸렸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평화와 생명의 가르침을 통해 반생명과 갈등의 사회를 치유해보자는 취지입니다.
교황이 오신 닷새간 많은 사람들은 심적으로 '치유'를 받았지만, 교황이 떠난 후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있고, 현실은 또다시 냉혹하기만 합니다. 아직도 소통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약자와 아픈 사람들을 만나 상처를 보듬어 주었던 교황님처럼 달라이 라마 또한 광화문 태평로에서 전쟁과 폭력, 권력과 가난, 각종 재앙으로 인해 고통받는 인류의 생명과 인권 회복, 자유, 평화를 위한 간절한 기도로 뜨겁게 채워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