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진영을 불교예술의 경지로 승화
수묵인물화 대가 김호석 교수
데스크승인 2013.06.26 10:31:08 허정철 기자 | hjc@ibulgyo.com
30년 넘게 붓들어 온
신심 깊은 불교 작가
섬세한 붓질과 묘사로
내면에 비친 인물표현
공덕이 높은 스님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인 진영(眞影). 이는 대상인물에 대한 존경과 추모의 정으로 그려지는 기록화로 스님의 겉모습과 내면의 정신세계까지 포함한 모든 것을 제한된 화면에 표현했다.
이런 가운데 만해스님(1879∼1944), 성철스님(1912∼1993), 광덕스님(1927∼1999), 법정스님(1932∼2010) 등 근현대 한국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스님들의 진영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불교작가가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30년 넘게 붓을 들어온 수묵 인물화의 대가 김호석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아래 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독실한 불자인 그는 만해스님을 비롯해 성철스님, 지효스님, 관응스님, 광덕스님, 법정스님, 일타스님, 지관스님에 이르기까지 그 동안 그려온 스님의 진영만 20여 점에 이른다. 현재도 진영을 그리며 화업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화단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젊은 시절 그린 성철스님의 진영은 수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특별한 인연으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 원택스님 등 성철스님의 문도에서 찾아와 “성철스님을 죽이든 살리든, 화가의 득의작(得意作)이 될 만한 작품으로 스님을 그려달라”고 진영을 의뢰했다.
그는 “화가의 예술영역을 존중해 준 원택스님의 말에 큰 감동을 받고, 성철스님의 사진을 보지 않고 스님의 수행처를 직접 찾아다니며 진영을 완성했다”고 회고했다. 성철스님의 진영 외에도 지난 3월 서울 길상사에서 열린 법정스님 3주기 추모법회에서 김호석 교수가 그린 스님의 진영이 처음으로 공개돼 화제가 됐다. 회색빛 장삼에 붉은 가사를 걸쳐 입은 법정스님의 진영에는 생전에 가르쳐 준 무소유 정신이 담겨있다. 전통 초상화 기법인 섬세한 배채(背彩) 붓질과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선, 사실주의적 인물 묘사가 돋보인다.
30년 넘게 붓을 들어 온 김호석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성철스님 진영.
법정스님의 진영.
김호석 교수가 그리는 인물화는 스님에만 머물지 않는다. 승속을 막론하고 세상을 개혁하거나 발전되도록 노력했던 인물이라면 그림의 주인공이 된다. 정약용, 김구, 안익태, 신채호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에 위인과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렸다.
이 가운데 김 교수가 퇴임 직전에 청와대에서 그린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그는 “당시 청와대에서 이틀간 대통령을 만나 면담과 함께 그림을 그렸다”면서 “완성된 그림을 본 대통령은 왼쪽 눈썹을 보고 ‘어떻게 이 흉터를 찾아냈냐’며 크게 놀랐다”면서 “그 흉터는 권 여사와 젊은 시절 연애할 때 한 눈을 팔다 걷다가 넘어져 다친 상처”라고 말했다. 이어 “둘 만이 간직한 추억이 화가에게 들켰다면서 웃던 대통령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완성된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는 역대 대통령의 형식과 크기가 달라 결국 김해 봉하마을 사저로 옮겨졌다.
김 교수는 “인물화는 대상으로 삼은 인물에 존경하는 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그릴 수가 없다”면서 “돌아가신 분이라도 사진 한 장으로 그 인물을 표현할 수 없고 관조적 입장에서 내면깊이 바라보면서 작업해야 하는 만큼 1년에 한 작품 이상 완성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올해 하반기 ‘희롱’을 주제로 그 동안 준비한 작품 2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열고 대중에게 한 걸음 다가간다. 김 교수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전할 수 있는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불교신문2924호/2013년6월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