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마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하셨느니라.
......
이와 같이 막히는 데서 도리어 통하는 것이요, 통함을 구하는 것이 도리어 막히는 것이니, 이래서 부처님께서는 저 장애 가운데서 보리도(菩提道)를 얻으셨느니라.
널리 알려진 『보왕삼매론』의 일부입니다.
독일 나치당의 히틀러는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학살을 자행하기 직전에 나치당은 독일 내에서만 최소 8천 명의 자국 장애인을 집단 안락사시킨 선례가 있었습니다.
‘선의 반대말은 악이 아니라 독선’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수백년간 종교전쟁을 치르며 구축된 서유럽 선진국의 톨레랑스 전통이 한순간 역사에서 사라졌던 것입니다.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함께 살고 있는 내 남편이나 자식마저도 애를 태웁니다.
하물며 장애인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인정하고, 자신을 비추어보는 또다른 거울로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일 내가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아예 가정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장애는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내 안에 있는 장애를 살피는데도 아주 인색합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스스로 장애라고 생각하는 ‘본래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또한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마치 감기 바이러스나 종양처럼 나의 병고, 나의 곤란, 나의 장애는 오로지 퇴치하거나 제거되어야만 하는지,
매월 한달에 한번씩, 승가원 장애아동들이 만날 때나 헤어질 때 ‘나마스테 Namaste’하고 인사를 해왔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마음과 사랑을 다해 예배드립니다’하고 우리들에게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