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길상사가 대원각일 때, 저가 30대 때였지요. 지금 설법전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그때 시중들던 여인들도 이런 짓은 하지 않았어요.
제 허물을 감추려고 남을 덥석 물고 제 부족을 숨기자니 허풍이 더 늘고…… 이 사람이 길상사 총무스님(중)이었다니 그 동안 극락전 기와지붕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다행스럽다.
대원각을 절로 만들어 달라면서 법정스님에게 시주한 김영한 보살은 이렇게 말했다. 「이것요... 한 줄의 싯귀보다 못합니다.」 신문에는 이런 제목이었다. 「첫사랑은 백석이요 마지막 사랑은 부처님 이었다」 김영한(김자야) 보살의 사랑은 시인 백석이었습니다. 백석의 시 한편 읽어봅시다.
흰 바람벽이 있어
백 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지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아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 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陶淵明과 ‘라이나 마리아 릴케’가 그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