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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 19-12-17

    길상사 미얀마 성지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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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성지순례기

높고 광활하지만 청빈한 부처님의 나라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주지 덕일스님)에서 5박 7일간(11월 18일부터 24일) 주지스님외 15명의 신도가 불탑의 나라 미얀마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미얀마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미얀마 국민의 생활상을 엿보며 강렬하게 느꼈던 몇 가지를 글로 써 본다.


11월 18일, 인천 국제공항에서 저녁 6시 30분경 출발한 비행기는 약 6시간 30분의 비행 후 미얀마 양곤 (Yangon) 국제공항에 현지 시간 저녁 11시경(시차 2시간 30분)에 도착했다.


11월 19일, 성지 순례 일정상 가장 힘든 일정은 현지에서의 첫째 날인 듯하다. 양곤에서 아침 6시 국내선 비행기를 서둘러 타고 바간(Bagan)으로 이동해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바간의 불탑과 사찰을 참배하는 일정이었다. 이동하는 버스에서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미얀마는 아시아 서남부에 있는 연방국으로 국민의 90%가 불교도이고, 11세기 중엽 바간(Bagan) 왕조의 아노라타(Anawrahta) 왕이 등극하면서 남방 불교를 받아들여 강력한 국가 종교로 발전시켰다. 미얀마 최초의 통일 국가였던 바간 왕조에 건립된 사원 수가 400만 개가 넘었다고 하며, 현재는 약 2,500여 개의 사원이 바간 지역에 남아 있다고 한다.


현지 가이드가 미얀마에서는 모든 사찰에 들어갈 때는 맨발로 다녀야 한다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순례기간동안 '미얀마 정장'을 할 것을 권했다. 우리 일행은 모두 맨발과 슬리퍼를 신고 버스에서 내려 쉐지곤 파고다를 가는 길에 아침에만 잠깐 열리는 ‘냐우 재래시장’을 방문했다. 오래된 목재와 천막들로 가린 협소한 곳에서 튀김, 과일, 야채 몇 묶음, 파리 때가 날아다니는 생닭과 생선을 나무 도마에 올려놓고 칼로 치고 있는 사람들과 부처님께 공양할 각종 꽃을 팔면서 웃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나로서는 가난한 시절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던 추억이 떠올랐고, 미얀마인들의 순박한 생활상과 순수함을 엿 볼 수 있었다.


바간의 대표적 건축물 황금빛의 쉐지곤 파고다(Shwezigon pagoda)를 방문했다. 쉐지곤 파고다는 ‘황금 모래 언덕 위에 세워진 사원’ 이라는 뜻으로 바간 왕조의 3대 걸작중 하나이며 미얀마 불탑의 원형으로 붓다의 사리(정골과 치아)를 모신 곳이다.


덕일 스님을 비롯한 우리 일행은 대탑을 중심으로 탑돌이를 하면서 그 네 면의 벽마다 계신 부처님에게 기도를 했다. 그리고 석가모니불 앞에 몸을 정갈히 하여, 미얀마에서의 첫 예불과 천수경, 반야심경, 축원과 더불어 덕일 스님의 법문을 청해듣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한국 불자들이 기도하는 모습이 신기한 듯 미얀마인들과 외국인들이 우리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기에 자세를 다시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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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과 바간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쉐산도 파고다를 가려고 했으나, 몇 해 전 지진으로 인해 탑 위에 올라갈 수 없다고 하여, 동서남북으로 바간 시내를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는 곳으로 바간 타워 전망대에 올라갔다. 바간 전망대에 올라서는 순간 시원한 바람과 확 펼쳐지는 바간의 숲과 나무 그리고 각각의 형태와 모습으로 빛나는 불탑에 모두 ‘극락이 따로 없네.’라는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내려가기를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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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일, 이른 아침 일행은 바간에서 만달레이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만달레이는 미얀마 마지막 왕조의 수도였고 현재 미얀마 제2의 도시로서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이다. 미얀마 최대 규모의 불교 교육기관인 마하간다용 수도원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1,000여명의 승려들이 교리를 익히고 승려가 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곳인데, 많은 관광객들이 이미 가득 차 있어 매우 혼잡했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매일 오전 10시 전후로 진행되는 승려들의 공양하는 모습을 보기 위함이다. 정갈하게 목욕을 한 뒤 탁발 공양을 위해 늘어서는 기다란 줄, 오후불식이라 하루의 마지막 식사를 하는 수행자의 모습, 공양을 받은 음식을 가난한 아이들에게 다시 나눠주는 수행자의 모습을 보며, 보시를 주고받는 일의 경건함과 음식으로 인해 숨 쉴 수 있는 소소한 일상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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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무니 파고다(Mahamuni pagoda)는 만달레이에서 가장 큰 파고다이며, 쉐다곤 파고다, 짜익티요 파고다와 함께 미얀마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3대 파고다 중의 하나다. 사원에 들어서는 순간 엄청 화려하게 장식된 천장이 눈길을 끄고, 사원 중앙에 위치한 마하무니 불상의 황금빛이 눈에 들어오는데, 높이 3.8M의 황금 불상으로 시민들이 부착한 금박의 무게가 12톤이 넘는다고 한다. 기부한 각종 보석들의 값어치만 400만 달러 이상이라고 하니, 미얀마가 가난한 나라인지 황금의 나라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남자들이 줄을 서서 불상위에 올라가 금박을 붙이고 소원을 빌고 있는데, 금박을 너무 많이 붙여서 불상은 몸에 두드러기가 생긴 듯 매끄럽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1900년 이후 점차 사람들이 황금을 붙이기 시작하여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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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무니 파고다를 둘러본 후 해발 236m의 작은 산에 있는 만달레이 힐(Mandalay Hill)로 이동했다. 이곳은 부처님이 오백 나한을 이끌고 순례했던 곳으로 “내가 열반에 든 뒤 이곳은 불교 도시로서 발전할 것이며, 왕조는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라고 예언하셨다고 한다.” 만달레이 힐에서는 만달레이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으며, 발아래로는 만달레이 왕궁이 보인다. 날이 맑으면 에야워디 강 건너편의 밍군(Mingun) 대탑까지도 볼 수 있다고 한다.


11월 21일, 우리 일행은 만달레이에서 인따족의 문화와 전통을 계승한 헤호(Heho)라는 도시로 이동하였다. 헤호는 미얀마 행정구역 중 제일 크며 전 국토의 1/4정도가 되는 도시이지만, 해발 1,300m가 넘는 고원지대로 아름다운 산들에 둘러싸여져 있다. 문명과 거리가 먼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으며 우리가 찾는 인레 호수를 가려면 반드시 들려야 하는 곳이다.


호수에서 태어나 호수에서 생을 마감하는 미얀마 소수민족들과 그들의 터전인 인레 호수는 미얀마 순례 중 색다른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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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헤호에서 숙박한 호텔은 호수를 가운데 끼고 방갈로 형태의 객실이 둘러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른 아침 떠오르는 해가 호수를 붉게 물들이자 호텔 주변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동안의 피곤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아침 일정으로 헤호 근처 사찰의 주지 스님과 공부하는 학승들 서른 분을 모시고 아침공양을 대접하는 행사가 있었다. 호텔에 도착한 미얀마 스님들이 미리 마련된 단 위에 좌정을 하고, 우리 일행들은 삼배를 올리고 그 앞에 앉았다. 미얀마 사찰의 주지스님께서 축원을 해주시고 함께 사진 촬영도 하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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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3일, 아침 공양을 한 후 우리 일행은 까비에 파고다(kaba Aye Pagoda)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하였다. 까비에(kaba Aye)란 세계평화라는 뜻으로 1953년 제6차 불교집결이 이루어진 후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염원에서 부처님사리, 사리불존자사리, 목련존자사리를 모시고 건립된 사원으로, 원형 벽면에는 각국에서 모셔온 불상들이 나라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미얀마 종교성직원의 안내에 따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친견하고, 2명씩 짝을 지어 무릎을 꿇고 합장하자 머리 위에 진신사리를 살짝 올려 주는 의식을 거행해 주었다. 많은 부처님 사리 중에 가장 역사적 근거가 있는 사리를 모신 곳이기에 마치 부처님을 뵙는 것 같은 환희심이 난다. 우리 일행은 길상사 덕일 주지스님과 함께 성지순례를 원만회향하게 됨을 감사하며, 까비에 파고다에서 회향기도를 봉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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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조금씩 내려앉을 무렵 우리 일행은 순례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쉐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로 이동했다. 쉐다곤 이름의 쉐는 황금, 다곤은 언덕이라는 뜻이다. 높이 112.17m의 크고 아름다운 황금 탑! 전체가 황금으로 도금되어 상륜부는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등으로 장식되어 있어 낮과 밤이 따로 없이 눈부시게 빛난다. 미얀마의 왕들이 자신의 몸무게만큼 금을 보시하고 불자들 역시 금과 보석 등을 보시한 결과 쉐다곤 파고다는 오늘날과 같은 화려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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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 새벽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미얀마인들 모두가 부처님을 예경하면서 맑은 가난을 실천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공경심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하심하고 낮추어야 하듯이 이번 미얀마 여행은 나를 한없이 낮추고 겸허하게 만들어 주었다. 언젠가 내 스스로 욕심을 내거나 헛된 망상을 가지게 된다면 ‘많고, 높고, 크지만 청빈한 부처님의 나라 미얀마’의 파고다에서 ‘무소유와 맑고 향기롭게’ 화두를 다시 새기고 오고 싶다. 바쁘고 한결같은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해외 성지순례에서 많은 생각과 여운으로 나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마련해준 길상사 덕일 스님에게 이 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우리 모두 밍글라바~ (행복하세요)


글 : 홍정근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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