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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 12-09-02

    나무와 풀[비움과 채움] -장일명-

본문

숲기행에 참가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칩니다.

나무와 풀이 모여 숲을 이루고, 새와 곤충들이 함께하면서 자연을 이루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따로일 수 없음을 가르쳐줍니다.

이번 치악산 구룡사 - 세렴폭포 구간 길 과 성황림 방문길은 박순자님의 시 '치악산' 에 쓰여있는 한 구절처럼 '치악산 한 골짜기 가져도 무겁지 않은 ' 마음 편한 숲기행이었습니다.

나무와 풀을 마주하면서 떠오른 생각이 있어 숲기행 가족들과 나누려 합니다.

드러내지 않고 베풂은 너무 아름답고 귀한 일입니다.

없는 듯 있으면서, 있음으로서의 역할을 다해내는, '비인듯 하면서 꽉 채움'으로 존재하는 것 앞에서 절로 머리 숙여 집니다.

마음을 내려 놓게 됩니다.

비움으로서 모든 것을 채우는 나무[裸無, 南無]와 풀[Full]에게서 그것을 배웁니다.

모든 것을 내어줌으로 없이 되면서도 모든 것을 채워주는 나무, 쉘실버스타인의 잔잔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가 깊은 감동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인 듯 합니다.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강한 생명력을 지니는 생명체가 풀입니다. 흔하기 때문에 존재의 가치가 들어나지 않지만 그 생명력의 강함이 풋풋하게 구석구석을 채워줍니다.

나무[南無]는 불가에서 歸依를 의미하는 梵語입니다.

'나보다 나은 이에게 몸을 맡겨 의지하고 받드는 일'을 의미합니다.

불자들의 chant인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은 무한수명과 무한광명을 지닌 아미타부처와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시는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함을 말합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커다란 존재인 태양을 향해 가까이 하며, 같이 움직이면서 정남(正南)의 자리에 머무르게 될 때, 나의 그림자는 없어지고 나의 존재 또한 없어지면서[나(=我)無] 커다란 존재와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귀의이고 비움입니다.

그때 내 존재는 꽉채워짐으로 충만해 집니다.

충만해 지면서, 풀[Full]이 되면서 자유자재가 됩니다. 커다란 존재 안에서 채워지기 대문입니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더 빨리 울고, 먼저 일어나며, 바람보다 더 늦게 누워도 먼저 일어나고, 늦게 울어도 먼저 웃게 됩니다.' (김수영의 '풀')

나무와 풀 사이에서 나를 벗어버리고, 남는 것 없으면서[裸無] 채움[Full]을 배웁니다.

겨울의 裸木은 모든 것을 떨침으로 한 해를 완전히 채우면서[充滿] 봄을 향하고, 봄이 되었을 때 새 풀[Full]로 또 채웁니다.

비움과 채움의 커다란 질서 앞에서 더욱 작아지는 나를 봅니다.

비울 줄 모르고 채우기에만 급급했던 어리석음을 뒤듲게 깨우쳐 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떨쳐버리고[裸無], 비우라고[나(=我)無] 조용하지만 커다란 음성이 속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