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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 08-04-28

    75일째(4.26) 도로변에 버려진 탄피와 달팽이의 죽음에서 운하의 미래를 그려봅니다

본문




봄 비를 맞으며 출발한 순레길이 부여군 왕포리에서 시작하여 왕진교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금강변을 따라 형성되 온 수많은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구간이며, 동시에 금강변으로 수많은 도로가 나면서 산자락을 가르는 모습을 보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오늘로 순례길이 75일째에 이르렀습니다. 그동안 비단처럼 아름다운 금강의 물길을 따라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오늘 출발 장소는 부여군 왕포리에 있는 하수종말처리장 입구였습니다. 8시를 조금 넘은 시간에 참여자들이 속속들이 도착하였으나, 추위에 몸을 움추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순례단 역시 오랜만에 비를 맞으며 걸음을 옮겨야 하는 상황인지라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추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순례단도 하루 참여자도 모두 우비를 찾아 몸을 가리기에 주저함이 없었으나, 다행히 출발시간이 되어 비는 잦아들었습니다.




이 추운 날씨에도 많은 참여자분들이 하루 여정을 함께 하였습니다. 부여군에 있는 비로사,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와 실상사, 화계사 등지의 사찰에서 스님들과 신자분들 참여하여 강을 모시는 순례에 함께 하였습니다.




<달팽이의 죽음에서 운하를 봅니다>


순례단은 오후에 백마강교를 건너 금강 상류로 이어지는 왕진교에 이르는 여정을 진행하였습니다. 이 구간에서 금강은 청양 칠갑산에서 발원한 ‘지천(之川)’을 만납니다. 칠갑산에서 발원하여 천리길의 금강에 합류되는 지천은 청양군 대치면 작천(鵲川)리와 장평면 지천리를 가르고 흐른다하여 지천이라 불리우고, 특히 흐르는 모양이 갈지(之)자 형태로 굽이쳐 흐른다 하여 역시 지천이며, 매우 아름다운 하천입니다.




순례단은 백마강교를 넘어 왕진교로 나아가는 길에서 새로운 왕진교 연결도로 공사가 한창인 곳을 통과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떨어져 있는 수많은 탄피와 달팽이가 죽어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았습니다.





길을 걸어가면서 탄피를 줍는 일은 이제 일상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지역이나 가릴 것 없이 강변길 인적이 뜸한 곳에서는 길가에 버려져 있은 탄피를 보게 됩니다. 먼길을 오가는 길손이 우리 땅에 와서 하늘을 가르는 총탄 소리에 눈을 감아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탄피를 보았던 순례단도 무감각해지는 것 같습니다.






도로 공사가 한창인 지역인지라 인근 수풀에서 나온 달팽이들이 이동하면서 도로 턱을 넘지 못하고 시멘트위에서 말라죽은 것 같습니다. 주변이 모두 논밭으로 습기를 머금은 지역이었으나, 이제는 시멘트 콘크리트 도로와 달팽이가 넘기에는 어려운 턱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도 넘나들기 어려운 도로이니 달팽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 사람이 편해지자고 수많은 도로를 만들면서 세상은 도로 천지가 되었다 해도 틀린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도로 공사 하나에도 이리 많은 생물들이 죽어가는데, 금강을 따라 계속 이어지는 그 넓은 도로에 만족 못하고 기어이 금강에 시멘트 콘크리트로 수조를 만들고, 수많은 강변 둔치를 없애면서 강바닥을 긁어내야 하는 운하를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공사로 인해 터전이 파괴되는 생명은 어쩌라는 것인지 갑갑할 따름입니다.





‘편리’하고자 하였던 우리 사회의 욕망은 더 큰 편리를 추구하면서, 그 결과 운하라는 미망을 만들어내었습니다. 한 사람의 머리에서 ‘운하라는 욕망덩어리’의 정책이 추진된 것이 아닐 것이며, ‘현대화 = 개발’이라는 공식에 익숙한 우리 사회의 지난한 모습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발전’으로의 사회운영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오늘의 여정은 “걸으면서 과연 어떠한 존재이며 의미인가 생각하는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청와대에서는 절대 포기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 걸음이 생활속에서 실천하는 씨앗들이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지관 스님의 기도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제 하루를 묶었던 비로사에서는 오늘 많은 스님들과 신자분들이 함께 순례에 참여하였습니다. 홍교스님은 “순례단과 뜻을 함께하고 싶었다”며, 이어서 “운하 건설로 무수한 생명이 희생 될 겁니다. 생명은 모두 동등하고 귀중합니다. 불교의 계율에도 그 첫 번째가 불살생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은 국민이 반대하는데 왜 하려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운하 정책을 추진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하여 “한나라의 지도자라면 생각이 깊어야 합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많은 의견을 수렴 한 후 옳고 그름을 잘 따져서 신중한 판단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모두가 행복하고 편안한 길을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며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경제제일주의 가치관의 확산이 우려되며, “우리 국민들도 눈앞에 이익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사고를 가질 것”을 당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