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올해 맑고 향기롭게 강연회(일요특강)은 "나의 삶, 나의 길" 이라는 주제로
자신의 전문 분야 또는 힘들고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분들을 모셔서
자신의 삶에 있어 성공담과 실패담을 들어보고, 함께 공감해보는 시간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6월 25일(일) 에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원 김주용 박사를 초청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3.1운동>에 대하여 열강을 청해들었습니다.
● 강사 소개 :
김주용 박사는 현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으로 13년간 국외독립운동사적 업무를 담당하며, 숨겨진 독립운동의 역사를 찾아내는 일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6월 25일(일)에는 김주용 박사를 초청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3.1운동>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저서 : 역사를 따라 걷다 1,2,3 / 열전 조명하 / 만주지역 친일단체, 친일-비겁한 변명 / 근대 만주 도시 역사지리 연구 / 일제의 간도 경제침략과 한인사회
특강 바로 보기 : http://kilsangsa.or.kr/vod/일요법회/2017_0625_일요특강(김주용).wmv
(영상 화면 클릭 하세요)
강연 요약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이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위의 인용문은 대한민국 수립 당시 헌법이다. 이후에 헌법이 수차례 개정되었으며, 1987년 10월 29일 개정된 헌법 아래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헌법 전문에 밝혔듯이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고 되어 있다. 1987년 수정된 헌법 전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먼저 3.1독립선언서를 잠시 보겠습니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여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차로서 자손만대에 고하여 민족 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노라.(후략)
공약삼장
1. 금일 오인의 차거는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즉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오.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하지 말라.
1.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1. 일체의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여 오인의 주장과 태도로 하여금 어대까지던지 광명정대하게 하라.
오늘 이 자리에서의 3.1운동의 위대성이 어디에 있는 지, 그리고 그것의 결과물인 대한민국임시정부는 3.1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또 기념하고 있는 지 살펴보면서, 이것이 오늘날 왜 중요한지 서로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국경절 문제를 1919년 12월 1일 국무회의에서 처음으로 논의하였다. 이 회의를 통해 국경일과 국경일 명칭안의 입안이 결정되었으며, 임시의정원의 결의를 거쳐 3월 1일을 독립선언일로 제정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는 3.1운동 1주년을 앞둔 1920년 2월 1일 내부부 포고 제1호로 3.1독립선언 1주년기념식 준비회가 조직되었다.
마침내 1920년 3월 1일 아침 6시경 상해 프랑스 조계의 한인 가옥에는 부활한 태극기가 날기 시작하였다. 바로 밤세기를 기다리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가슴벅찬 상해의 3.1절 분위기이다. 임시정부는 오전 10시 임시의정원에서 이동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원과 정부 직원 그리고 임시의정원 및 인성학교 학생 등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오후 2시 정안사로 올림픽극장에서 대한교민단이 주관하는 3.1절 축하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교민단장 여운형의 개회사, 이화숙의 축하 독창, 이동휘, 이동녕, 안창호의 축사로, 외빈 대표 이인걸의 축사, 중국남녀 학생의 축하무예 공연을 끝으로 오후 4시반 제1회 3.1절 축하식이 막을 내렸다.
가두시위, 일본총영사관까지 진행하였고 러시아인들은 우라, 미인들은 모자를 벗어서 답례를 하였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독립국임을 천명하는 동시에 우리 민족 스스로 단결을 다지는 행사로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임시정부는 3.1운동을 국경일로 제정하였을까. 바로 3.1운동으로 독립국임을 천명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1919년 3월 1일의 독립선언이 곧 대한민국의 독립이자 건국이며, 이를 계승한 전국대표가 상해에 모여 수립한 것이 임시정부라는 인식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래서 상해에서 임시정부는 해마다 3.1절을 국경일로 기념하였다.
1919년 3.1운동의 기억을 소환하여 임시정부는 사분오열되고 있는 독립운동세력을 통합하려고 했다. 이른바 “대동단결”이다. 1920년 3.1절 기념식에서 도산 안창호는 “일본인들이 3.1운동을 무효라고 주장하는데 우리 민족은 이날을 영원히 유효케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921년 임시대통령 이승만은 “더욱 결합하고 더욱 융화”할 것을, 김규식은 “心을 단결하고 誠을 합하여 주야 분투”할 것을 강조했다. 단결이 민족의 사활이다. 이것은 바로 3.1운동에서 보여주었던 민족의 저력을 기억 저편에서 다시 끄집어 내어 오늘을 성찰하고 미래에 대한 혜안을 제시하기 위함이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 의거 이후 상해에서의 공식적인 3.1절기념식은 거행하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해에는 강고한 한국인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자료를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2017년 3월 1일 독립기념관에서 공개된 배준철 자료는 대한민국의 구성원들이 3.1운동을 어떻게 여기고 인식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중경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44년 3월 1일 기념식에서 “한민족의 위대한 혁명기념일”에 총단결을 강조하였으며, 또한 3.1운동을 단순한 독립선언이 아니라 일제 강점과 전국대의 구곡을 탈피하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건립을 지향한 민주혁명으로 인식하였다. 3.1운동의 기억에서 삼균주의(참정권, 수익권, 수학권)를 원리로 건국강령을 소환한 임시정부는 이를 통해 해방 후 수립될 새로운 독립국가가 지향할 기본 이념을 제시했다. 바로 자유, 평등, 진보였다. 이것은 3.1독립선언에 나오는 정의와 인도를 제창한 반파시스트 운동이며, 공존공영의 시대정신인 것이다.
* 마지막으로 건국절의 허구성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면, 건국절을 주장하는 자들의 논리는 일본의 우익과 일맥상통한다. 즉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부정하고 1965년 한일협정 과정에서 일본이 주장했던 ‘한국 분리독립론’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한일 협정과정에서 한국으로부터 일본이 한국의 분리 독립 요구를 받아들여 독립된 신생독립국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이 한국의 분리독립을 허락했다는 주장에는 한국병합과 이후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는 전제가 있다. 그렇다면 당시 모든 독립운동은 불법이며, 대한민국의 헌법에 있는 3.1운동도 불령선인, 폭도들의 소요사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독립운동가는 범죄자라고 하는 것이 일본 우익의 주장인데 대한민국에서 건국절을 주장하는 자들도 이와 같은 논리이다. 바꿔야 한다. 그 길에 여러분도 동참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