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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 06-04-18

    연꽃으로 지은 가사

본문

***'맑고 향기로운 책'을 소식지를 통하여 늘 소개받고, 책을 구해서 혼자서라도 읽어보려 합니다. 저의 미얀마 순례기 52편 중 한 편을 올립니다. 포항교사불자회에서 16명의 법우들이 정초에 불심의 정토, 미얀마 땅을 순례하였습니다. 순례하며 만난 아름다운 글 한 편을 우리말로 옮겨서 올려 봅니다. 실례가 되지나 않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향운 합장. 25. 연꽃으로 지은 가사 어제처럼 바간 항공사의 몸체가 작은 비행기에 올랐다. 옆자리에 앉은 금륜 법우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지긋이 눈을 감고, 나는 사탕 한 알을 입에 물고 말없이 눈을 감았다. 그러다 눈을 떠서 기내의 화보 <<연꽃 lotus>>을 펼친다. 어제부터 난 비행기 꼬리에 그려진 연꽃 봉오리를 보고 이국의 비행기이지만 무엇인가 친숙하고 반가운 느낌을 받았다. 햇살에 막 개화하려는 노란 연꽃 봉오리 사진이 화보의 속표지에 실려 있었다. 그 밑에 달린 글은 미얀마 불교 문명에서 연꽃은 어떤 이미지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다. 북송의 성리학자 주렴계(周濂溪) 선생의 조촐한 글 <애련설(愛蓮說)>을 닮은 상큼한 문장이다. <미얀마 문화에서는 호수의 수면 위 곧게 솟은 줄기 끝에 피어난 연꽃은 정결과 영예로움으로 일어나는 기운생동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연꽃은 자신을 성취하고, 당당히 선 최선의 사람을 상징한다. 곧게 솟는 굳셈에도 향기롭고 섬세한 얼굴을 가진 연꽃은 오랜 동안 미얀마의 신심과 문화 속에 깊이 뿌리 내렸다. 오래된 불경 <<지 나따 파칼 타니 Zi-natta Pakar Thani>>에 이르길, 궁궐을 떠나 출가의 길에 선 아름다운 싯달타 태자에게 하늘나라 범천이 연꽃 속에서 찾은 한 벌 가사를 공양 올렸다. 이런 연고로 따딩유(Thadingyut)나 따자웅다잉(Tazaungdaing) 같은 보름날에 열리는 빛의 축제 때는 ‘연꽃 가사’라 이르는 가사를 특별히 지어 절에 가서 부처님께 공양 올린다. 구십년 전에 인레(Inle) 호수의 한 여인이 우러러는 조실 큰스님께 공양 올리려고 연꽃 줄기에서 삼을 삼아서 실제로 연꽃 가사를 지은 일도 있다. 정말이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연꽃 줄기 실로 가사를 짜는 이 전통이 인레 호수에서는 오늘날도 이어지고 있다. 미얀마의 왕들은 필요한 아홉 개의 의자를 가졌다. 흔히 불상을 연꽃 대좌에 모시듯이, 그 가운데서 하나는 연꽃이 새겨진 망고나무 의자였다. 불탑들의 원통 몸체는 크고 작은 연꽃잎들로 띠를 둘렀다. 집안의 불단에도 신선한 연꽃 봉오리가 그 어떤 꽃들보다 격조 높고 은은한 향기를 피워낸다. 성숙한 여인이 지니는 다섯 가지 품성 중에 하나는 숨결에 연꽃 향내를 간직하는 것이다. “연꽃처럼 맑고 향기로워라” 이 말은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자주 들려주는 바람이다. 실로 이 말 말고 무슨 말을 달리 하겠는가?> -잉 윈(YIN WYN), <연꽃의 영예 The Glory of the Lotus> 어부들이 임금님께 바친 대궐마당 연꽃 속에서 심청이가 걸어 나왔듯이, 신선한 아침 햇살에 맺힌 연꽃 봉오리 속에서 걸어 나온 우리들은 옛 서울 만달레이 땅에 닿았다. 새로 지은 넓고도 한적한 만달레이 공항이었다. 여유롭게 짐을 찾고서 버스가 올 때까지 청사 앞마당에서 기다렸다. 지평선만 보이는 황량한 들판에서 서늘한 아침 기운이 밀려와 옷자락에 스며든다. 청색 론지를 입고 하늘색 목도리를 두른 정광화 법우가 체조를 가르쳐 준다. 우리들은 빙 둘러서서 남녀노소가 한 데 어울려 학창 시절 익힌 ‘신세기 체조’ 두 번을 연거푸 하고, 짝을 지워 서로를 등짐지고서는 뻐근한 허리 근육의 긴장을 풀었다. 일상의 굴레와 눈치와 체면을 훌훌 벗어버리고 허물없이 보내는 일탈의 시간이다. 아! 이 행복과 즐거움이야, 말로 다 못하겠다. 치마 론지를 입고 웃으며 지켜보는 순박한 택시 기사들도 덩달아 표정이 밝아진다. 임거사님은 이런 추억을 놓치지 않고 사진기에 담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