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후원하기 나의후원

마음

    • 04-08-12

    선화의 좌충우돌 禪수련기 2

본문

< 셋째날 > 일어나 세면 후 물을 세컵이나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빈속에 찬물을 마신탓인지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예불을 고통 속에 드리고 설법전에 돌아와 앉으니 눈앞이 까마득 했습니다. 이어질 108배를 어찌해야 좋을지.. 보살님께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108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그냥 하기로 마음먹고 108배를 드렸습니다. 108배 후 포행시간에 혼자 돌에 앉아 다리를 주무르며 투덜투덜 거렸습니다. 다리를 주무르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혜관스님께서 바람처럼 나타나셨습니다. 저는 불평하느라 가까이 오시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너무 놀라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스님께서는 앉으라시며 다리 많이 아프냐고 물으셨습니다. 묵언이라 대답을 못하자 스님께서는 웃으시며 언덕을 내려가셨습니다. 따스히 말을 건네주신 스님의 뒷모습을 뵈니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설움이 솟아나 눈물이 흘렀습니다. 멍하니 앉아있다 목탁소리에 재빨리 흐르는 눈물을 닦고 설법전으로 향했습니다. 다시 두 발에 힘이 났습니다. 아침공양과 운력을 마치고 이어진 반야심경 강의, 좌선, 점심공양.. 점심공양 후 자유정진 시간 다들 밖으로 나가시더군요. 저는 그냥 설법전에 남아 수련교재 여백에 오전에 느낀 것들을 적었습니다. 참선과 요가 후 다시 찾아온 참선시간.. 다행히 와선이어서 짧은 시간 단잠에 빠졌습니다..;; 저녁발우공양 후 예불을 드리고 잠시 세면과 휴식을 취했습니다. 극락전 마당에 좌복을 펴고 앉아 지석용씨의 오카리나연주를 들었습니다. 달빛아래 별빛아래 은은하게 들려오는 오카리나 소리.. 1080배의 두려움은 온데간데없고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못하는 노래까지 한가락 뽑고 나니 차라리 마음에 후련해지고 1080배를 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마음을 차분히 하고 좌선에 임했습니다. 항상 좌선시간에 꾸벅이기 일쑤였는데 마지막 좌선만은 정말 열심히 정진했습니다. 3일간 했던 상념들을 모두 모아 곱씹으며 제 의문에 대한 작은 답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작지만 큰 깨달음.. 대망의 1080배 시간. ‘다시 태어나게 해주십시오. 다시 태어나겠습니다’라고 발원을 하고 일배 일배 절을 했습니다. 그 누구를 향한 것이 아닌 나만을 위한 나와의 싸움.. 주지스님이신 덕조스님과 함께한 첫 번째 시간은 그런대로 잘 따라갔으나 체력이 다하여 두 번째 시간을 너무나 힘겹게 보냈습니다. 주저앉고 싶은 유혹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시 태어나는 고통이라고 믿으며 힘을 내어보았습니다. 저는 ‘모니불’쪽이었는데 제가 주저앉을 때마다 뒤에 계신 스님께서 더 힘있게 ‘모니불’을 외쳐 주셔서 다시 마음을 잡고 일어섰습니다. 마지막 시간은 한배도 빠뜨리지 않고 했습니다. 마지막 일배를 하며 다시 한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정신을 수습하여 마지막 예불을 드리고 온몸을 씻고 마지막 발우공양을 드렸습니다. 입맛 없을 수련생들을 위해 정갈한 흰죽을 준비해주신 보살님들의 세심한 배려에 다시 한번 감사했습니다. 마지막 운력을 마치고 여러 스님들과의 차담시간을 가졌습니다. 묵언을 완전 해제해주시고,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답해주시고, 도반님들에 대한 여러 통계도 말씀해주셨습니다. 두분이 중도하차 하신 것과 기독교가 저 뿐이라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수계식을 통해 저는 일심행(一心行)이라는 법명을 받았습니다. 비록 불교신자가 아니라 일심행이라는 이름을 언제 다시 들어볼까만은, 이름을 지어주신 주지스님 말씀처럼 이리저리 두리번 데지 않고 한마음으로 똑바로 한길만 가겠습니다. 짐을 챙겨 길상사 일주문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습니다. 그렇게 저의 3박 4일 ‘나를 찾아 나섰던 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1080배를 드리며 약속했던 것처럼..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앞으로 더 거듭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어리버리하고 부족한 저를 많이 도와주신 여러 도반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정성스러운 공양으로 보시를 느끼게 해주신 보살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어떤 말보다 직접 행으로서 깨우치게 해주신 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거칠고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