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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 04-08-12

    선화의 좌충우돌 禪수련기 1

본문

< 수련회에 참가하기 전 > 10대의 초록빛 시간을 지나 들어선 20대, 20살.. 가혹하리만치 아름다운 나의 젊음은 환희가 아닌 절망의 시작이었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관 부재, 내 길에 대한 방향감각 상실.. 출렁이는 감정의 바다 위에 홀로 둥둥 떠다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나는 결심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란 물음에 답을 내리고 잃어버린 나를 찾겠다고.. 평소 호기심이 많고 모험을 즐기는 성격이라 주저 없이 수련회를 선택했지만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했습니다. 속세의 얽힌 끈들은 좀처럼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생소한 불교의식들에 대한 걱정이 더해졌습니다. 결국 무거운 마음으로 길상사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 첫째날 > 길상사에 도착해보니 이미 많은 분들이 와계시더군요. 황급히 수련복을 갈아입고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인욕반 3번.. 나는 ‘강선화’라는 이름을 버리고 인욕반 3번이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인욕’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욕됨을 참는다’라는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요^^ 입재식 후 생활,예불,발우에 대한 습의가 있었습니다. 처음 스님들을 뵈었을 때 가장 놀란 것은 전통식 가사를 수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뵙는 스님들께서는 대부분 개량된 가사를 수하고 계시거든요. 게다가 이 불볕더위에 전통식 가사를 수하고 계신 스님들의 인내심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첫 발우공양시간. 밥당번이어서 한바퀴 돌고오니 제 발우에는 반찬이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고추와 알 수 없는 쌈야채! 어찌나 맵고 쓰던지..ㅠㅠ 다른 도반들께서는 잘 드시는데 저는 발우를 들고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습니다. 저 때문에 도반들께서 청수물 드실까봐 안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은 단하나 뿐이었습니다. 일단 무조건 입에 집어넣었습니다. 생고추 한개와 쌈야채 다섯장을 입에 넣고 눈질끈감고 청수물을 마셨습니다. 입에서 다시 나오려는 야채들을 애써 달래며 발우공양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리고 바로 해우소로 달려가 뱉었습니다. 위급한 상황을 넘겨 안도의 한숨을 쉴 틈도 없이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제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부끄럽고 애써 차려주신 보살님들께 죄송하고.. (거듭 말씀드리지만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녁 예불을 드리고 108배를 드리고 나니 벌써 하루가 다 지났더군요. 자리를 펴고 누우니 눈이 절로 감겼습니다. < 둘째날 > 신기하게도 눈이 딱 떠졌습니다. 씻고 아침공양과 108배 드리고 운력시간. 여자해우소를 청소하며 전날의 과업으로 해우소에 배정된 것 같아 또 한번 반성했습니다. 그런데 길상사는 해우소도 어찌나 깨끗하고 예쁘던지요. 알알이 박힌 고운 돌들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닥을 비로 쓱쓱 쓸 때 나는 청명한 소리에 또 한번 반했습니다. 부처님의 생애 강의를 들은 후 참선에 들었습니다. 바람에 몸을 맡긴 풍경 소리, 끝나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는 누구이며 이곳에 왜 와있는지.. 하지만 정진도 잠시, 슬슬 다리가 저려오고 몸이 비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오후 좌선시간에는 수마가 찾아와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지산스님의 재미난 강의를 듣고, 요가로 굳은 몸을 풀고 저녁발우공양과 예불을 마치고 또 다시 찾아온 108배 시간. 처음보다 많이 익숙해졌지만 엉거주춤한 제 자세에서는 아직도 ‘초보티’가 났습니다. 씻고 땀에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고 나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편지.. 마음을 담아 한자 한자 썼습니다. 어설프지만 나름대로 적응해가는 나의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