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불교신자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불교 교리에 대한 공부를 한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기독교신자였던 아내와의 오랜 종교적 갈등을 마감하고 아내가 불교에 귀의한지 8 개월만인 2004년 정초에 아내는 저보고 길상사의 선수련회에 다녀오라고 말하더군요. 그동안 불교를 독려하던 저로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승락을 하였읍니다. 긴 연휴의 휴유증으로 몸도 마음도 쳐지는 토요일 오후에 길상사를 방문하였구요. 십년전 어느 별채에선가 거래선 외국손님을 모시고 고기를 구워 먹었던 일을 회상하니 이게 바로 상전벽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읍니다. 첫째날은 주로 강의가 많아서였는지 젊은 스님의 열정적인 모습이 보기 좋아서였는지 별 어려움 없이 보냈읍니다. 다만 백팔배는 정말 힘들었읍니다. 유난히 땀이 많은 체질인 저는 바닥에 흥건해진 땀을 보니 남보기 창피했읍니다. 몇년전 운동하다 부러진 왼쪽 다리로 인해 쉴새없이 일어났다 절하는 동작은 정말 참기 어려운 고행이었읍니다. 삼천배도 하시는 심신 깊은 불자님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겠지요. 저녁 늦게까지 이어진 일정을 마치고 잠자리에 누우니 금방 올것 같던 잠이 오질 않아 이리 저리 뒤척이다 선잠을 잤는가 싶었는데 벌써 새벽 예불시간이더군요. 법당에 들어서니 아내가 처형과 와있었읍니다. 깜짝 놀랐지요. 묵언 수행 중이라 아무 말도 못했지만 고맙더군요. 둘째날 힘들었던 것은 참선이었읍니다. 25분동안 참선을 하고 10분을 원을 이뤄 천천히 걷는 방식은 저로선 견디기 쉽지 않았읍니다. 부실한 외쪽 다리부터 아파오기 시작하고 온 몸이 쑤시었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화두만을 생각하면서 가만히 있는 것 자체였읍니다. 저는 솔직히 화두에 몰입할 수 없더군요. 그래서 별 생각을 다했읍니다. 20분 동안 골프장을 2군데나 돌기도 했고, 다음 20분 동안은 나의 지난 일을 회상하고 반성도 했으며, 때론 저의 소원을 20분 동안 줄기차게 빌기도 했읍니다. 세분의 스님들과의 만남이 무었보다 소중했던것 같습니다. 세분은 각 각 다른 개성을 가지고 계셨기에 더욱 인간적으로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온몸에서 열기가 분출할 것같은 다혈질의 경상도 사나이, 젊은 스님, 여유로운 미소와 적절한 유머, 다양한 학식을 아낌없이 보여주신 멋쟁이 스님, 처음부터 끝까지 농담도 개인적인 말씀도 없이 똑같은 저음의 톤으로 성심성의껏 선을 지도해 주신 박정희 대통령을 연상시켰던 스님, 세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말씀 올립니다. 어쩌면 젊은날의 어느날 삶의 질곡을 느끼셨거나 무상을 경험하시고, 범인으로선 쉽지 않은 수행의 결단을 하신 세분 스님들, 반드시 성불하시길 기원합니다. (사족) 절 밥이 이렇게 맛있는줄 몰랐읍니다. 특히 깻잎 짱아치는 환상이었습니다. 자원 봉사로 열심히 밥을 지어 주신 보살님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조용히 뒷일을 처리해 주시던 간사님께도 감사 말씀올립니다. 길상사의 모든 분들, 새해 복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