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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 03-10-28

    주말 禪수련회의 기록

본문

하늘을 향해 길을 내며 당당하게 가지를 뻗은 느티나무의 잎새가 때를 맞아 곱게 물들어 가는 길상사 도량에서의 선 수련회-수련생 발원문은 이러했다. “(전략)이번 수련을 통해 삶의 의미를 새롭게 다지고 자기 존재를 자각하고 세 상을 보는 눈을 뜨게 하시며, 가슴마다 보리의 씨앗을 심어 성불의 열매를 맺 도록 하옵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배우고 익힌 정진의 힘으로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이 자리 에서 만난 이웃들과 진실한 도반을 이루어, 이 땅에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항상 충만하게 하소서“ 입재식 때 주지 스님께서 해 주신 황벽 선사와 경봉 스님의 이야기는 이러했 다. 어느 날 배휴가 개원사를 찾아옵니다. 그리하여 벽에 걸린 조사의 영정들을 보 고는 원주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벽에 걸린 것은 무엇입니까?” “큰스님들의 영정입니다.” “영정은 볼 만한데 큰스님들은 어디에 계십니까?” 이에 원주스님은 그만 말이 막혀 버렸습니다. 그러자 배휴는 ‘혹시 참선하는 스님이 있느냐?’고 하면서 만나게 해달라고 부 탁하였습니다. “희운希運이라는 수좌가 있는데 참선 공부를 합니다.” 그리하여 배휴는 처음으로 황벽스님과 얼굴을 대하게 되었고 또 물었습니다. “저 벽에 걸린 큰스님의 영정들은 볼 만한데 큰스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러자 황벽스님은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배상공裴相公!” 놀라서 얼떨결에 대답하였습니다. “예.” 배휴가 대답을 하니 황벽 선사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대는 어디에 계시오.” 이에 배휴는 크게 느낀 바가 있었고 그 뒤부터 황벽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습 니다. 너는 어디에 있느냐? 너는 누구냐? 항시 외계의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이 뭣 고”를 참구하라는 말씀이라 생각했다. 한 신학자가 경봉 스님을 찾아 왔다. 스님이 물으셨다. “하나님이 어디에 있소” “하나님은 제 마음 속에 있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신 스님의 일갈. “마음은 원래 안팎이 없습니다.” 흔히 “무엇은 내 마음 속에 있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 마음의 안팎 또한 경 계짓기라는 말씀이셨다. 깨어짐. 깨어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선원장 스님이 하신 설법-기억과 기록의 단편은 이러하다. 참선을 하며 다리가 저리고, 어깨가 결리는 등의 육신의 아픔을 통해 일상의 나쁜 것들이 빠져 나갑니다. 그 아픔을 참는 것 ‘유일한 자존심’입니다. 그 아픔 을 피하려 하지 말고 그 아픔을 온전히 견뎌 보십시오. 그리고 쉼 없는 내면의 질문을 던지십시오. ‘나’의 운전자, 주재자를 섬광같이 느껴 보십시오. 괴로움, 행복 등을 느끼는 “주체”가 누구인가를 안으로 안으로 물어야 합니다. 세상의 거센 물살에 빠져 죽지 않고 멋지게 윈드서핑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완전한 독립!! 참선이란 항상 지금 현재 여기에 100% 충실하게 참여하여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온전히 누리는 것입니다. 정신 해방!! 헛 것인, 잘못된 나라는 정체성, 껍질을 깨뜨려 진정한 나, 커다란 존재로의 무엇! 거대 생명 안 에서의 하나 -존재의 실상을 깨달으십시오. 졸음-일상의 질곡, 타성을 자기 안 의 혁명, 능동적 의식적 노력으로 독한 맘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경험자들의 수련회라 처음엔 30분 참선 후, 방선하여 느리게 걷기를 했고 바 로 50분을 앉았다. 시간이 지나며 오른 다리에 파묻힌 왼쪽 발가락들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오기 시작했고, 왼 다리에 짓눌린 오른쪽 다리는 쥐가 내리면 서 감각이 없어져 갔다.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앉으려니 평소에 약했던 내장 기관들이 자극을 받아 왼편 대장 부위와 위장이 아프다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 했다. 아픔에 굴복 당하지 않으리라. 아픔을 있는 그대로 느끼리라. 이리 앉아 있으면 결국 아프게 되어 있는 것이다. 눈물이 찔끔 났다. 나는 누구인가? 이 리 아픔을 느끼며 앉아 있는 나는 누구인가? 도량을 지나는 가을 바람소리, 풍 경 소리, 개짓는 소리를 듣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를 고요히 묻지 못하고 두 다리가, 내장들이 울부짖듯이 물었다. 아픔의 고비를 넘기니 땅을 가르고 솟아 오르는 로봇 태권 V처럼 수많은 은 하계, 그 중의 한 은하계를 운행하는 태양의 주위를, 또한 달을 거느리고 도는 지구 위에 올라 앉아 어두운, 그러나 아름다운 우주를 여행하는 내가 느껴졌다. 끝없는 우주 공간을 날고 있는데 딱 딱 딱 죽비 소리가 들렸다. 역 시!!! 더 이상 못 참겠다. 뛰쳐 나가고 싶다라는 고비를 넘겨야 어김없이 죽비 소리는 들려 오는 것이었다. 일어나 천천히 둥글게 걸었다. 너무 오래 걷는다 싶었다. 왜 이리 오래 걷게 하시지. 의문이 났다. 그 때 선원장 스님의 말씀. “오래 앉아 있어 아픔을 느꼈던 그 놈은 무엇이며, 오래 걸으니 또 앉고 싶어 하는 그 놈은 무엇입니까?” “......” 설법전에 이불을 깔고 누웠지만 정신은 또렷해 잠이 오지 않았다. 귓가를 맴 도는 모기의 날개짓 소리를 들으며 깨어 있었는 지 잠이 들었던 것인지 새벽 이 왔다. 울력시간-도량에 떨어져 나린 낙엽을 쓸었다. 빗질하는 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았다. 느티나무 아래엔 어김없이 느티나무 잎새가 소나무 아래엔 솔잎이 떨 어져 있었다. 느티나무 잎새가 그리 예쁜지 나는 새삼 알게 되었다. 난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난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 가는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 다니는 청자기 빛 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즈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난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에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디 순한 작은 짐승이었다. 왜 신석정의 <작은짐승>에서 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린 것이 느티나무 잎새 인 지 알 것만 같았다. 낙엽을 하나 주워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껍질이 벗겨 진 이파리 한쪽에 섬세한 잎맥이 드러나 있었다. 모세혈관처럼 가는 잎맥을 통 해 흘렀을, 어미 나무의, 대지의, 전 우주의 사랑이 보이는 듯 했다. 며칠 전, 부산 시청으로 지율스님을 찾아 뵈었을 때 가늘고 섬세한 거미줄에 매달린 물 방울 사진을 가르키시며 “전 이걸 인드라망이라고 불러요” 라고 하셨던 게 떠올랐다. 이 작은 이파리 하나에도 인드라망이 있네라고 생각 했다. 잘 마른 낙엽에서 구수한 향이 났다. 낙엽을 모아 푸대에 담는데 가슴으로 한 아름 안아도 가벼웠다. 이 예쁜 낙엽들이 어디서 고운 재로 태워지거나, 숲 속 나무들 발치에서 곱게 썩었으면 하고 바랐다. 도량 청소를 끝내고 설법전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주지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다들 힘을 써서 도량이 깨끗해졌네. 도량청정무하예라” 나의 기록은 여기까지이다. 아픔 견디기. 새가 제 이름을 부르듯이, 그 속에서 나를 부르기. 느티나무 잎 새가 나에게 알려준 사랑. 사랑 그게 무언가 나뭇잎이 떨어져 내리는 일, 대지가 우주가 나무를 사랑함이겠지. 南無나무 南無나무 南無나무 나는 조용히 읊조려 보았다. 선원장 스님을 비롯한 모든 스님들께, 보이지 않게 마음 써 주신 자원 봉사자 분들께 함께 입술 깨물며 아픔을 견디신 수련생 분들과 길상사의 나무들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