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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 03-10-02

    선 수련회의 기록

본문

지난 달, 모래 마당에 알찬 열매를 떨어뜨려 환영 인사를 건넸던 나무가 서 있 는 사찰에서 주말에 선 수련회가 있었다. 토요일 오후 3시에 입재해서 다음 날 3시 회향하였다. 默言 수련회였다. 설법전, 구석방에서 수련복을 입다 사물함 구석에서 사진 액자 여러 개 를 발견한다. 눈에 익은 경주 부처골(佛谷) 감실 석불 좌상의 상호가 확대된 사진 앞 에 쪼그리고 앉는다. 두터운 눈두덩 아래로 감은 듯한 두 눈, 알 듯 모 를 듯한 미소.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며 비와 바람이 다시 곱게 조각한 돌부처의 미소가 그 날 따라 애잔하다. 이 소박한 석굴 좌상의 무엇이 이 리도 내 가슴을 흔드는 것일까? 무릎을 베고 누우면 따스하게 머리카락이 라도 쓰담아 줄 듯하다. 곁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수련회 입재 의식 후에 불교 상식 강의와 습의 시간이 있었고, 선원장 스님께서 직접 참선을 지도해 주셨다. 첫 날에는 수식관을 다음날에는 간 화선하는 법을 배웠다. 기초 교리 시간에 오늘 이 자리에 "마음밭(心田)에 깨달음(菩提)의 씨앗 을 뿌리러 왔다"라는 문장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몸짓 손짓 한 동작, 한 동작 오랜 수행의 향이 묻어나는 선원장 스님의 詩적인 설법이 허리를 곧추 세우게 한다. 오늘 이 자리에서 오롯이 자신의 속에 침잠하여 자신이 주인되는 시간 을 가져 보라. 헤매지 말고, 천방지축, 좌충우돌 남의 발 밟지 말고 멋진 댄서가 되라. (사바세계를 무대로 멋진 춤사위를 추어 보라는 어느 큰 스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서로 윤택한 교감을 주고 받는 만남을 가져라. 참선이란 마음의 보석을 찾아내는 일이다. 생활을 변화시키는 참선의 힘!! 오랜 나태와 안일에 젖어 있던 육신이라 무릎 꿇고 앉아 있는 것도, 30 분 반가부좌도 참기 힘든 고통이니. 새벽 4시에 기상한 일요일에는 수마 까지 덮쳐 비몽사몽간에 옆에서 들려 오는 죽비 소리마저 꿈결이다. 밤 11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선원장 스님께서 굳나잇 인사를 하신다. "들이 쉬고 내쉬는 호흡이 끊어지지 않고 살아서 내일 만나도록 하지요." 다음날 다행히 서른여 명 수련생 중에 한 명도 호흡 끊어지지 않고 다 시 만났다. "오늘 이렇게 살아 만나는 것이 기적입니다." 과연!!! 공양 시간에는 입을 열어 오관게를 송한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보리(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이 게송은 일전에 실상사 공양간에서 보고 부끄러이 외우고 있던 게송인 데 역시나 또 부끄러웠다. 그러나 여느 때보다 달디 단 밥을 (세상에! 참 선 시간에는 그렇게 안되더니) 아무 생.각.없.이. 먹는다. 울력 시간, 주차장 화단의 흙을 파서 공터에 옮겨 놓는 일을 반복했다. 오가며 길가의 키 큰 소나무들을 올려다 본다. 당당하게 곧게 자란 소 나무들은 평상의 나처럼 헛된 망상에 끄달리며 살지는 않겠지. 뿌리는 다 부지게 흙을 다잡고, 부지런히 계절을 준비하고 푸른 잎을 피우고 떨어뜨 리고 나이테를 늘려 가겠지. 계절은 오고 가되 세월은 잊었겠지. 나무들 은 오롯이 나무로서 침묵한다. 나는 묵언 중이었으되 묵언을 하지 못한 다. 말만 묵언하면 무엇하나 상념은 또 끝없이 흘러간다. 점심 공양 후, 수련생들이 좌복을 깔고 몸을 쉰다. 나도 좌복에 누워 있 다 잠이 든다. 기척 소리에 눈을 뜨니 나와 보살님 한 분만 누워 있을 뿐 이다. 수련생들은 착석하고, 선원장 스님은 이미 와 계신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다. 평소에 잠자기 좋아하고 눕기 좋아했던 습을 들켜 버 린 부끄러움이란! 머리를 조아리고 앉아 있다. 선원장 스님이 들려 주시 는수좌 스님들의 선방 생활 이야기가 질책으로 들린다. 몇 해 전 겨울, 진주-순천을 마지막으로 운행하는 통일호 열차를 타고 송광사에 우연히 들른 적이 있었다. 겨울이라 추웠고, 처음 가 본 산사 는 낯설었다.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 대웅전 앞 마당에서 느꼈던 서슬 퍼런 기운. 동안거 철이었고 경내는 고 요했고, 스님네들은 용맹정진 중이었을 게고 맑은 기운 속에 서서 난 이 상한 분발심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크게 분한 마음을 내고 크게 의심을 내고 크게 믿음을 내어 발심하는 방 법이 있다는 것을 수련회 교재에서 발견한다. "부처님도 우리와 같은 범 부 중생이었으나 도를 이루어서 대자유인이 되셨으니 어찌 '나'라고 이루 지 못할 것인가. 스스로 분한 마음을 일으켜야 공부가 시작된다."라는. 이 부끄러움을 분한 마음으로!! 스님께서는 삶 자체를 참선으로 활용하는 여러 방법에 대해 말씀하신 다. 쓰레기통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 바로 우리가 사는 모습이라는 말씀 에 깊이 반성한다. 손톱도 함부로 깎아서 버리지 않으며 코 푼 휴지도 고 마운 마음으로 한 번 더 바라본다는 얘기를 들으며 내 방 휴지통의 내용 물을 떠올린다. 뒤죽박죽으로 버려진 내 해이한 정신과 생활의 조각 조각 들을 당장 가서 정리하리라 결심한다. 베개 봉화 무위정사에서의 일이다. 평소 스님께선 선물로 들어온 종이 상자들을 그냥 버리는 일이 없으셨다. 길고 높이가 적당한 것들을 따로 모아 그 속에 다른 종이 상자들을 오려서 채워 넣고, 선물을 포장해 왔던 종이로 다시 싸서 베개를 만드셨다. 그것을 여러 개 만들어 두었다가 손님이 찾아오면 내놓으시며 말씀하셨다. "여기는 특별히 다른 데하고는 틀려서 베개 인심이 좋지. 이 베개로 자고 나면 머리가 개운할거야." -서암스님 시자 엮음 <소리없는 소리>에서 깨어 있으면 검박하지 않을래야 아니 할 수 없다. 부끄러움과 분심 속에 수련회는 끝났다. 돌아갈 마음에 분주한 우리에게 주지 스님 가라사대. "여러분은 어디로 가십니까? 집으로 돌아 가십니까? 여러분의 진정한 집 은 어디입니까?" "......" ******************** 함께 수련하신 법우님들! 다리는 많이 풀리셨겠지요. 전 정진반 6번 이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