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편 1080배을 넘어서 묵언을 한다는것이 참으로 자연스럽게 느껴진 시간이었다. 이제는 적응이 다 되었다는 이야기인가? 이는 역으로 말하면 그동안 내가 쓸데없는 말들을 많이 하고 살았다는 이야기일수도있다. 낮동안 후덥지근한 날씨가 경내에 어둠이 깔리자 산들산들 바람이 불어와 시원함을 더해준다. 극락전앞 넓은 마당위에 펼쳐진 작은 음악회에선 주지스님의 섬세함이 물씬풍겨졌다. 아마도 섬세한 연출이 주지스님의 아이디어리라는 생각을 하였다. 오카리나 악기의 음율속에서 주옥같은 명곡들이 흘러나올적에는 그동안의 수련회를 통한 피로을 말끔히 씻어주는 감동의 연속이었다. 음악회라하여 아니 절에서 무슨음악회를? 생각하였으나 막상 하늘에 둥둥실떠있는 달을 보며, 극락전 아름다운 지붕마루를 바라보면서 절에서 사는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작은 음악회후에는 주지스님의 배려에 따라 극락전 앞 마당에서의 참선은 그냥 밤새 머물고싶을 정도로 참선이 가깝게 느껴졌다. 방에서만 하는것은 아니구나. 이렇듯 넓은 장소에서 자연의 소리와 달빛에 어우러져 한몸이 되는 것도 더없이 좋았다. 가끔 졸음을 쫓아주려 수련생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후려치는 주지스님의 죽대소리 조차도 즐거운 소리로 다가왔다. 운명의 시간 1080배 시간이 되었다. 묵언속에서도 더 깊은 침묵들이 수련생들사이에 흐른다. 과연 내가 잘할수있을 것인가? 그래 이정도야 뭐 대략적으로 3시간이 소요된다는데, 풀코스 마라톤을 밥먹듯이 뛴 나로서는 4시간까지는 문제가 없지라고 위안을 해본다. 속으로 이정도는 쉽게할 수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전날 빨아논 도서관 걸레로 사용하던 수건을 준비해서 바닥에 깔았다. 내심 걸레에서 나오는 시궁창 냄새가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수건 빌려달랄수도 없는 상황. 현장스님의 선창에 따라 석가. 모니불을 양편으로 갈라 외치면서 1배1배를 더해나갔다. 죽도를 치면서 함께 하시는 현장스님이 대단해 보였다. 아니 스님들은 잠도 없으신가 ? 수련을 많이 하면 잠이 없어지나? 몇일을 보니 밤늦게 까지 수련생들을 위해 힘쓰다가 새벽에 일어나 수련생들을 지도하지 않았나. 순간 처음에는 해병유격대 조교같던 모습을 연상했던 입재식때의 생각이 잘못었구나 마음 고쳐먹었다. 50분을 정진하고나서 10분 쉬는동안 절을 하면서 무슨 생각해야하나을 고심하였다. 1080배하라니까 긴장속에 따라하는것은 아닌가? 하고 자문해보기도하였다. 이어지는 지산스님의 죽대소리 역시 경쾌하게 들리면서 예상했던대로 무리없이 할수있었다. 석가모니불을 외치면서 내가 살아온 지난날과 미래에 올바로 살게해달라고 절실하게 기도하였다.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아내. 태훈, 늦둥이 성훈이 잘자라주길 바랬다. 부모님들도 건강하시길 기원했다. 내가하는 사업도 번창하길 바랬다. 그동안 지은 속세에서의 수많은 죄들을 고백하였다. 한없이 흐르는 땀방울로 씻어낼수 있다면 더 많이 땀이 나서 내몸을 정화시켜주길 바랬다. 그러면서 다른 고민보다도 코끝에 감기는 수건 아니 걸레에서 나오는 시궁창냄새로 인해 고통아닌 고통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어쩔것인가하고 포기하고 넘어갈 즈음에는 모든것이 사람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생각으로 초월하고 넘어가게되었다. 무수히 흐르는 땀을 어쩔도리없이 걸레로라도 훔쳐내야 했다. 새벽 3시간 넘어가니 1080배속으로 빠져들어가고있다. 아직까지 현장스님은 힘들어 하는 수련생들을 독려하기에 여념이 없다. 함께 절을 올리면서 말이다. 다시한번 언제나 현장(?)에 계시는 현장스님이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현장스님이라 하셨던가? 새벽 3시 20여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힘이 죽 빠지는것이 아닌가. 도무지 눈앞이 캄캄하기 시작하였다. 허리나 다리가 아픈것 같지 않은데 왜이럴까 ? 연속적으로 따라하면서 이몸은 내몸이 아니다 부처님에 귀의하였다. 부처님 제발! 그래도 힘이 죽 빠진다. 몇번을 힘겨워하니 현장스님이 어깨를 주물러주신다. 그 따스함이 아직것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부처임을 만난것일까? 힘을 얻으니 새벽3시 30분이 넘어간다. 조금만 참으면된다. 이겨내야지. 앞열에 서있는데 내가 못하면 뒷사람들도 헤멜것을 생각하면서 힘을 냈다. 이쯤되면 풀코스(42.195km)마라톤에 비유하자면 35km을 달린셈이라 마음먹었다. 인간한계의 벽이 35-38km지점이라한다. 이 지점을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갈등을 극복하면 "런너스 하이"라는 말로 달리는 사람들은 표현한다. 이는 "무아의 경지"에 오르면서 달리는 것이다. 즉, 달림이들의 초절정의 기쁨과 환희를 맛보는 오르가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마도 새벽 3시 45분경에 이를 조금은 맛보았다. 힘은 없지만 나도 모르게 석가모니불을 외치면서 1배1배를 더하는 나 자신을 보고 나스스로도 놀라지 않을 수없었다. 새벽 3시 50분 죽비 소리가 마지막을 알리면서 탁하고 멈춰섰다. 순간 새벽의 고요함이 온몸에 흐르는 땀과 함께 흘러내린다. 부족하지만 해냈구나. 하지만 내스스로 완벽하게 1080배를 조금은 다 못해냈다 하드라도(아마도 50배정도) 부끄럽지는 않았다. 다만 다음에는 3000배에 도전해보리라는 마음을 가져보았다. 밤을 지샌 몸이지만 정신이 말짱하고 몸은 더 가벼웠다. 아마도 며칠동안 정진한 덕이었을까?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새벽 목탁소리가 더없이 정겹게 느껴졌다. 아침예불로 마음을 추스렸다. 이제 조금있음 수계식과 회향식을 올리고 하산이다. 왠지 모를 서운함이 마음가득 몰려온다. 지도법사 차담에서 나온 질문에 의하면 조계종 승려가 되려면 40이 넘지 않아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도 넘겼으니 스님이 될수도없는노릇이고. 이전부터 집에서 아내에게 나는 나이들어 산에들어가 산다는이야길 입버릇처럼하였다. 자연을 사랑하고 즐기는 나의 마음을 표현한것을 우리아내는 절에가서 중이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있는 터였다. 수계첩을 받아 펼치는 순간 눈물이 날것같아 많이 참았다. 삼귀의와 오계을 읽어내려가면서 앞으로 부처님 가르침대로 삶을 살아야겠다 마음먹어본다. 수계첩 마지막부분에 길상사 금강계단 계사 덕조(德祖) 그리고 수계제자 정동창 법명 운산(雲山) 받아지님이라 적혀있다. 아 이제 덕조스님의 제자가되었구나. 기뻤다. 아니 덕조스님은 회주스님의 애제자이니시 그렇담 나도 회주스님의 손자 제자가되었다고 생각하니 더욱 기뻤다. 마지막으로 덕조 주지스님의 법문이 이어졌다. "수련생여러분들은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라. 아름답게! 행복하게!" 긴글 읽어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맑고 향기롭게 자원봉사자님들의 헌신적인 봉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주지스님, 강석스님, 지산스님, 현장스님께도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주지스님 앞으로 제자로서 자주 찾아뵙도록하겠습니다. 혹시 저에대해서 자세히아실려면 www.marathontour.co.kr/www.jtsnet.co.kr을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