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나는 누구인가 ?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범종소리에 사르르 눈이 떠진다. 자동적으로 눈을 비비고 아침예불하러 도서관을 내려서면는데 숲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이 유난히 맑게 느껴진다. 심산유곡이 따로없다 싶었다. 순간 나는 누구인가 ? 자문하여본다. 그래 오늘은 나는 누구인가을 화두로 생각하면서 하루를 보내리라. 이제 마음도 몸도 가쁜해진것같아 기분이 아주 상쾌했다. 생각했던대로 어느 현장(?)에서나 그러하시듯이 현장스님이 계셨다. 아침예불에 이은 독송에서는 "부지런함은 감로의 길이요. 게으름은 죽음의 길이다. 부지런한 사람은 죽지 않지만 게으른 사람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이다"에 마음이 실렸다. 앞으로 더욱 부지런하게 살리라. 세째날이라 그러한지 발우공양도 제법 익숙해졌다. 평소 아침을 잘 먹지 않는터라 아침 죽공양이 부담이 없어 마음에 들었다. 도량 및 숙소 청소 울력에서는 현장스님지도하에 극락전앞의 넓은 마당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쓸어내려갔다. 절생활은 모든것에 의미가 있어서일까. 보람된 울력이었다. 기다리던 덕조 주지스님의 법문은 내게 또다른 나를 발견하게된 계기가되었다. 주지스님 말씀에 수행정진하려면 첫째, 공부(참선)하려면 잠을 많이 자지마라. 아마도 이는 하고싶은것을 다하고 어찌 수행를 바르게할수있는가에 대한 책찍일것이란 생각이다. 둘째, 묵언(默言)을 실행에 옮겨라. 즉 내면 세계를 함부로 발설하지말라는 가르침으로 여겨진다. 이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말을 안해서 후회하기보다는 말을 많이 해서 후회한때가 내스스로 생각해보아도 많아서 더욱가슴에 새겨졌다. 네째, 많이 먹지마라. 자신의 양의 7할정도만을 먹어라. 다섯째, 경를 보지마라(선방에서) 이는 한우물만을 파라. 그래야만 참 수행의 길이 열린다는 말씀으로 생각되었다. 여섯째, 돌아다니지 마라. 돌아다니면 산만해서 제대로된것을 못보게된다는 말씀일것이다. 주지스님의 법문에선 여리면서도 강한 카리스마을 느낄수있어 경외심이 들었다. 더구나 회주스님의 모습을 보는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하였다. 실제로 많이 닮으신것은 아닌지(?). 스승과 제자는 닮은다고 말하는데.... 강석스님의 참선시간에 이르러서는 제법 자세가 잡힌 나를 발견하곤 나는 누구인가?을 연발하면서 빠져들어갔다. 역시 지산스님은 열정이시다. 사찰안내를 통하여 절생활의 기쁨과 체험적인 내용을 이야기 해주심으로 한층 우리를 여유롭게 만들어 주셨다. 점심 발우공양을 마치고는 짧고 깊은 잠으로 자유정진을 대신해야했다. 어쩔것인가. 오는 잠을 막을 재간은 도무지 없었다. 아직 신심이 부족해서일까? 이어지는 주지스님의 다도 수련에서는 다도를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아 좋았다. 다도는 첫째, 건강에 이롭기 때문이며, 둘째, 사색의 공간을 넓혀주기 때문이고 세째, 사람으로 하여금 예의롭게하는 것이란 말씀이 계셨다. 불교에서는 다도을 선(禪) 수행으로 보면서 성불의 개념으로 보아야한다고 하시는 말씀에서 차에대한 경외심이 들었다. 강석스님의 참선에선 여전히 어려움을 수반하지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화두을 가지고 견디어 나갔다. 익숙치않은 참선이지만 그래도 놀라운것은 우리몸이 못할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요가로 육체적인 피로을 가볍게 만들었다. 저녁 발우공양이후에 1080배에 대한 약간의 공포와 기대감으로 저녁예불동안 내내 1080배 생각만을 하였다. 제 4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