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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 03-08-08

    2차 수련회에 대한 소감

본문

지난 7월 31일부터 길상사에서 보낸 ‘2박 4일’간의 절집생활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자칭 불교신자라고 하면서 불교적인 생활과는 약간의 거리를 둔 나의 일상은 이번기회를 통해서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남의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해 있으나, 남을 위해 봉사하려는 생각이나 행동에는 소홀한 나를 발견했고, ‘내 판단은 항상 옳다’는 고정관념이 은연중에 내 마음의 중심에 자리하여 행동을 지배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또한 불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서 잘 아는 양 자만심에 가득한 도기도취 상태에 있음도 알았다. 시야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양 생각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더 넓은 세상이 있고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또한 최선을 다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번드레한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고 남을 배려하려는 따뜻한 마음들이 혼탁한 이 세상을 지탱하는 버팀목의 구실을 하고 있음도 느낄 수도 있었다. 이번 기회는 길상사가 추구하는 “맑고 향기로움”의 의미와 그것이 묻어나는 현장를 접할 수 있었다는데 무한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이번 수련회에 편성된 내용을 중심으로 그 특징적인 사항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묵언수행이다. 말은 상호간에 의사전달수단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일상사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화를 불러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수련회 참가하는 인원들이 선입관에 의해 불필요한 오해나 문제를 야기 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입소에서 回向하는 순간까지 “黙言修行”을 철저히 요구하고 있었다. 누구나 그것을 지키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제대로 실천한 경우가 많지 않은 듯 했다. 나 역시 그것을 지키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는 말에 의존한 의사전달을 하는데 익숙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참선수행이다.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틀고 앉자 ‘자신이 누구’인지를 되돌아보는 話頭 參究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몸의 유연성 부족과 근육이완이 잘 안 돼서 그런지 가부좌는 흉내도 낼 수 없었고 반가부좌의 자세를 취해도 10분 이상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이 뭣고‘란 화두는 고사하고 육체적인 고통에 얽매여 불쌍한 참선의 여행을 한 꼴이었다. 대부분의 수련생들은 참선수행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대단했다. 특히, 마지막날밤 10시~1시까지 주지스님이 직접 지도한 참선수행은 참선의 의미와 방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자신의 근본을 찾기 위한 치열한 구도정신과 자세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 분발을 촉구하였다.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육체에 마음을 두지 말고 자신의 존재를 찾는 화두를 붙들고 고뇌하라. 육체의 아픔은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면 자연히 해소된다 ”는 말은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근육이완 요령에 대해서 잘 지도해 주었다. 셋째, 발우공양이었다. 그 절차와 격식은 까다로웠으나 자신에게 주어진 음식물을 소중히 알고 필요한 양만큼만 갖는 절제의 의미를 일깨워주었다. 공양전에 하는 계송은 게걸스럽게 먹는 나의 식습관을 경계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또한 자신이 먹은 음식물의 찌꺼기는 어떠한 경우에도 허용하지 않고 청수에 헹구어 자신이 도로 먹는 행위는 곧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일깨워주는 것이었고, 인간이 발전과 편리함을 내세워 범하고 있는 무분별한 환경파괴와 오염, 낭비 등을 경책하는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넷째, 몸으로 일깨우는 참회정진이다. 아침‧저녁의 예불후에 실시한 108배의 참회는 은연중에 자신의 마음속에 자라고 있는 혼탁한 욕망과 산란한 심기 등 ‘마음의 잡초’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즉 ‘下心’을 가르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잘못된 신체적인 결함을 교정하고 체력을 단련하는 부가적 효과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특히 마지막 날에 있은 1,080배의 참회정진은 처음 실시해 보는 사람에게는 신체적으로 대단한 물의가 따르는 동작이고 많은 체력소모를 요구하였으나, 이를 통해서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시험하는 기회임을 알고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동참하였다. 회향후 귀가방향이 같아 동행한 도반은 마라톤 풀코스를 5차례이상 완주한바 있어 1,080배정도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가졌으나 막상 시작해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죽을힘을 다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고 그 어려움을 말하기도 했다. 다섯째, 수련생활에서 오는 긴장감을 적절히 풀어주었다. 수련생들이 좌식생활에 익숙하지 않아 수반되는 불편함이나 평소 잘못된 생활자세로 인해 이미 굳어진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요가’를 편성하였다. 특히 우리의 잘못된 자세로 인하여 굳어진 골반이나 어깨 부위 등을 이완 및 교정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고, 참선을 유지한답시고 쪼그리고 앉는 동작에서 오는 하체의 고통을 적절히 풀어주는 기회가 되었다. 담당 요가강사는 60대의 고령임에도 몸의 유연성 등은 20대 수준을 능가하므로 나를 더욱 초라하게 하였다. 그밖에 조석의 예불에 동참하게 하여 불교의식의 장중함을 느끼게 했고, ‘茶道’시간을 통해 茶문화에 대한 식견을 갖도록 하였으며, ‘寫經’을 통해 종교적인 이해를 넓히게 해 주었다. 또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는 기회도 주어졌다. 수명이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유언장을 작성토록 함으로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다음생의 준비하기 위해 남은 기간동안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돌아보게 하였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않은 ‘산사음악회’의 마련이다. 변화된 환경에서 오는 수련생들의 경직된 기분을 풀어주는 세심한 배려였다. ‘오카리나’라는 생소한 이름의 악기를 이용한 다양한 장르의 연주는 수련회의 분위기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천상의 소리’이었다. 또한 연주자(?)의 구수한 말솜씨와 정열적인 연주자세는 수련생을 감동시키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여섯째, 수련생들을 위해 준비된 곳곳은 성의와 배려한 마음이 곧 “맑고 향기롭게” 그 자체였다. 기간중에 맛있게 먹은 음식공양의 경우에 같은 음식이 겹치지 않도록 세삼하게 메뉴를 편성하였고 맛깔스럽게 조리한 상태는 시내 유명음식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특히 아침공양은 수련생들의 깔깔한 입맛을 고려하여 죽 종류로 준비하였고, 육류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 그 기분을 느끼게 한 ‘탕수육’이나 각종 절임류의 찬들은 사찰에서만 맛 볼 수 있는 귀한 음식들이었다. 도심에 위치해 있으므로 세속화된 음식들이 나올 것이라는 수련생들의 생각을 무너뜨린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한 이틀마다 수련복 상의(면 티샤스)를 교체해 주고, 잘 세탁된 침구류와 정갈한 숙소, 모기퇴치를 위한 준비 등 수련생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수련회비 6만원으로 그만한 식사를 제공하고 귀가시 수련생들에게 기념품(면 티)까지 제공하기에는 여유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내가 낸 작은 금액에 비해 몇 곱절의 과분한 대우를 받았다는 감동이 이는 것은 나만의 기분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도해 준 스님들의 열린 마음과 진솔한 태도, 자원봉사자들의 성의있는 보살핌은 결코 가식적인 행위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1,080회 참회 정진시 스님들 모두가 수련생들과 똑같은 동작으로 수련생들을 인도 및 독려하였고, 자원봉사자들이 동참하여 지친 수련생들을 격려하여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들이 수련생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어 불교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던 타종교인들의 인식을 교정시키는데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금번 수련회를 통해 느끼고 경험했던 모든 것들은 “길상사”가 여느 절과는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치밀한 계획과 준비, 성의와 관심, 참여의 노력이 없이는 감이 흉내 낼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길상사”의 개원을 위해 자신의 재산(7천여평의 대지와 건물 등)일체를 기증한 ‘김영환(법명:길상화) 보살의 보시정신과 화주이신 “법정”스님의 올 곧은 품성과 그의 첫 상좌인 “덕조”주지스님의 마음자리가 만든 “맑고 향기로움”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 깨달은 점을 이용하여 향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불교는 자신을 깨치는 자율적 성격의 종교이므로, 인간은 누구나 가진 불성을 자신의 근기에 맞도록 수행방식을 정하여 수시로 마음에 생기는 헛된 욕심이나 망상을 퇴치하여 자성을 밝히면 부처가 된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수시로 변하는 이 마음의 동요를 어떻게 관리하고 통제하고 안정시킬 것인지는 마음의 주인인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태풍에 동반된 폭풍우나 세찬 파도같이 일렁이고 있는 7정 5욕의 이 충동을 어떻게 잠재워, 호수의 잔잔한 물결의 수준으로 안정시킬 수 있을까?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고.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네. 욕심도 내려놓고 성냄도 벋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