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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3-22

    법정 스님 저작 절판과 디지털 공간의 무소유 -김헌식(데일리안 3.22)

본문

법정 스님 저작 절판과 디지털 공간의 무소유


<김헌식 칼럼>절판 유지는 무엇을 남겼는가



"앞으로 돌아가실만한 분을 선정해서 책을 미리 집필, 출판시키고 기다리는 것이 어떨까?"


고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한 출판사에서 이런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후 베스트 셀러 현상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그 한개의 출판사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그것은 사후 베스트 셀러를 생각하고 있는 출판계의 한 트렌드이기도 하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현상으로 보기에는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었다.


법정 스님의 절판 선언은 여러 가지 과제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사후 베스트 셀러가 낳은 폐해에 대한 반성적 깨달음이다. ´사후 베스트 셀러´는 유명한 인사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와 관련한 서적이 베스트셀러 위치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막연하게 그의 관련 책이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자신이 직접 집필한 책이 잘 팔리는 현상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저술한 &lt;여보 나좀 도와줘&gt; 라든지 자서전 &lt;성공과 좌절&gt;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고 김대중 대통령의 &lt;옥중서신&gt;, &lt;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gt;나 고 장영희 교수의 &lt;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gt;, &lt;내 생애 단 한 번 &gt; 등이 대표적이다.


법정 스님의 입적이후 저서가 품귀현상을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후 베스트셀러 때문이다. 특히 무소유의 초판부에 대한 주목은 바로 책이 소장가치 뿐만 아니라 재테크 차원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책은 빌려서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사는 데 익순한 독자들에게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뒤늦게 책을 사려는 것은 결국 책을 정상가격에서 이탈하게 만들었다. 특히 정상적인 가격의 매매 범위에서 벗어나기 일쑤인 헌책방에서는 더욱 심해진 현상이기도 하다.


인문학은 유한성에 대한 깨달음에서 근원하고 있다. 여기에서 유한성은 삶과 죽음을 말한다. 만약 인간이 유한한 삶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면 인문적 사유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한성은 가치의 부각을 낳는다. 이는 단순히 홈쇼핑 채널에서 한정 판매가 가치를 부여하면서 사람들에게 소비행위를 촉진시키는 데먼 한정 되지는 않는더, 법정스님은 입적으로 벌어진 서적의 품귀 현상과 베스셀러 현상은 유한성에서 비롯한다.


근본적으로 생의 유한성 때문에 더 이상 생존하는 모습을 볼 수 없으며, 말씀을 접할 수도 없다는 점은 오히려 그 가치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후 베스트셀러´는 단순히 유명인이 타계했다는 사실 그자체에서 비롯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 작용하는 대중심리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가 일관된 하나의 신념이나 원칙들을 유한한 삶에서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한한 삶의 정해진 수순은 단순히 유한성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하게 확장된다. 따라서 유한성은 더이상 유한하지 않고, 무한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유한한 삶 속에서 자칫 방기하기 쉬운 삶의 원칙들을 지켜낸 노고에 대한 헌정이다. 그것을 아무나 할 수 있다면 그러한 가치에 대한 지지와 선호의 헌정은 없을 것이다.


그간 출판물은 오프라인 공간에만 한정되는 모습을 보인다. 법정 스님 저서들의 출판을 두고 출판사와 ´맑고 향기롭게´ 측의 이견이 있다. 법정 스님의 유지에 따라 절판을 요구하고 있는 맑고 향기롭게 측의 뜻이 모두 받아들여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맑고 향기롭게´ 측은 법정 스님의 말씀을 인터넷 공간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이미 다른 출판사에게 소유권이 있는 경우에는 협의가 필요하다. 어쨌든, 인터넷 공간에서 오프라인의 유한성은 온라인의 무한성으로 확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좋은 말씀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활용하기 보다는 공적인 공간에서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것이 법정 스님이 남긴 무소유의 정신이다. 이로써 소유하지 않는 것이 결국 소유하는 것이 된다. 앞으로 출판계가 얼마나 그 유지를 따르는가에 달려 있지만, 적어도 유한성을 넘어선 무소유를 통해 공유의 공간을 우리 모두가 소유하게 될 모양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 (2010.03.22 07:4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