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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3-22

    아! 법정스님 -강동훈 (판판뉴스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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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법정스님



법정 스님이 11일 길상사에서 원적(圓寂)했다. 법정 스님은 불교계의 ‘어른’이었다. 1955년에 당대의 선승인 효봉 큰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출가하는 순간 ‘희열’을 느낄 정도로 ‘참다운 중’이었다고 함께 정진한 도반들은 전한다.


법정 스님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4.19와 5.16이 계기가 됐다. 이 시절 법정 스님은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과 유신 철폐운동에 참여했다. 법정스님은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후 반체제운동의 의미와 출가수행자로서의 자세를 고민하다 다시 걸망을 짊어진다.


출가 본사 송광사로 내려온 법정 스님은 1975년 10월부터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佛日庵)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다. 불일암에는 소임을 보는 행자나 보살 한명 없이 손수 공양을 지으며 수행을 해 왔다. 그러면서도 환경보호와 생명사랑을 실천하는 일을 시작했다. 스님은 1993년 프랑스 파리에 길상사를 개원하고 1994년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주창했다. 가수 김광석(작고), 작곡가 노영심이<맑고 향기롭게>라는 노래를 만들고 환경과 생명의 존엄성을 널리 펼친 것이 이 무렵이었다.


스님은 글을 쓰면서 1976년 산문집 `무소유`를 낸 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불일암 생활 17년째 되던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 오두막에서 지금까지 혼자 지내왔다.


법정 스님은 평소에는 강원도 산골에서 지냈지만 대중과의 소통도 계속했다. 특히 1996년 고급요정이던 성북동의 대원각을 길상화 보살(김영한 1999년 별세)로부터 아무 조건 없이 기부 받아 이듬해 12월 길상사로 탈바꿈시켜 창건한 후 회주로 주석하면서 1년에 여러 차례 정기 법문을 들려줬다.


법정 스님은 2003년 12월에는 길상사 회주 자리도 내놓았다. 그리고 <맑고 향기롭게 운동본부>회주 소임도 그만 둔다. 하지만 정기법문은 계속하면서 시대의 잘못은 날카롭게 꾸짖고, 세상살이의 번뇌를 호소하는 대중들을 위로한 법어는 지금도 경책이 되고 있다.


법정 스님은 다른 종교와도 벽을 허물었던 것으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법정 스님은 길상사 마당의 관세음보살상을 독실한 천주교신자 조각가인 최종태 전 서울대교수에게 맡겨 화제를 모았고, 1997년 12월 길상사 개원법회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방문했다. 법정 스님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특별 강론을 하기도 했다.


법정 스님은 세속과 인연을 다하기 전 주변사람들에게 형식적인 장례절차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홀연히 송광사 조계산 불일암을 올라가 듯 우리 곁을 떠나갔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있다는 뜻이다"(`무소유` 중에서)



강동훈 보도제작부장

강동훈기자 2010-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