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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3-18

    내가 만난 법정스님 (性隱 現聖)

본문

1986년 동안거를 송광사 선방 수선사에서 하게 되었다. 승보사찰의 가람 배치는 작은 계곡을 그대로 담아놓아 마치 어미 뱃속 같은 포근함이 있고 흐르는 계곡물은 잠시 쉬어가는 듯 소리죽여 조용히 흐르는 곳,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다 지친 용이 애타게 그리워하며 갈증을 해갈하려 달빛 마저 삼킬듯이 물빛을 노려보는 곳, 이곳은 수행자의 모습을 갖춰 놓은 관음의 자비도량처럼 언제나 아름다움으로 오가는 이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 도량에서 부처를 이루겠다 다짐하고 참선방을 찾은 나에게는 산속의 속삭임이 정겨웠고 바람에 기대어 휘어진 푸른 소나무가 마냥 성스러웠고 선방 소임에서 맡은 일은 목탁소리 메아리가 되도록 힘차게 두드려 고요속으로 선객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햇살이 좋은 어느날 선객스님들과 포행을 가면서 불임암으로 발길을 향하였다. 불일암 가는 길은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가 언덕 산길을 향하여 가면 숨 한두차례 돌렸다가면 양지바른 햇살을 담고 있는 도량으로 나를 안내했다. 흙 한줌 움켜지듯 쌓아놓은 회색빛 지붕 위로 파란 하늘이 펼쳐 있고 숲의 대화가 제법 흥겹게 노래를 하는 곳에 나는 서 있었다. 여기가 무소유의 노래가 나온 곳이구나 하면서 항아리들이 모여 있는 장독대에 서니 너무도 좋았다.


나는 그곳에서 무소유를 만났다. 그냥 그곳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너무 깊은 하늘이 내게 안겼다. 다른 수좌들은 법정스님을 찾아 방으로 들어갔고 나 홀로 무소유와의 만남을 가지고 있을 때 법정스님께서 들어오라며 손짓을 하셨다. 들어누웠던 나의 육신을 일으켜세워 방으로 들어 인사를 드렸다.


다른 수좌스님이 법정스님께 공부 이야기를 청하자 스님은 잠시 눈을 감고 말문을 여셨다. 그러면서 당시 여러 수좌스님들께서 성철스님을 모시고 용맹정진을 하게 되어 스님도 큰 발심을 내어 용맹정진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용맹정진중에 그만 병이 생겨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에 스님께서는 당신이 어느집의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까지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성철스님이 오셔서 그 깊은 잠을 깨웠고 병으로 용맹정진을 놓아야 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스님께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되었는데 용맹정진중에 병이 나서 참선을 할 수 없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하시면서 수좌들은 부디 지혜롭게 정진하시어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시며 말끝을 맺으셨습니다.


뒤돌아 내려오면서 다시 한번 법정스님의 말씀이 새겨졌습니다. 이것이 내가 만난 법정스님이었고 무소유였습니다. 이제 그분이 가시면서 하신 말들을 새겨보면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하지 않은 것은 그분이 갈망하던 수행정진의 꿈과 원력을 간직하고자 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업적을 모두에게 회향하도록 하는 것이 후학의 도리입니다.


그분이 던져버린 것은 그분의 그림자이지 자신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글자에 나타난 그리고 말 한마디에 보인 것을 가지고 절판이니 뭐니 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미 세상에는 법정스님 이전에 법정스님이 쓴 글들이 존재하였고 그것을 스님이 가져다 보여준 것 뿐입니다.


법정스님의 글은 절판 되거나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절판하여서도 않됩니다. 본래 공한 줄 알고 있기에 모두 놓았다고 하며 놓고 간다고 하였는데 무슨 까닭으로 절판이라 하며 모양을 갖추지 말라고 하겠습니까? 후학들은 곰곰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어리석게 글자와 언어에 갇혀 법정스님을 본다면 이보다 큰 허물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내가 만난 법정스님은 송광사 우화각 아래 물빛을 바라보며 구도를 갈망하는 용의 모습과 같은 분이었습니다. 부디 지혜롭게 법정스님을 바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존경하고 따르는 상좌 그리고 후학들이여!


2010년 3월 17일 性隱 現聖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