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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11-09

    [오마이뉴스] 마음 어지러울 땐 이 곳, 길상사를 한번 걸어보세요 - 23.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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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어지러울 땐 이 곳, 길상사를 한번 걸어보세요


23.08.21 15:41l최종 업데이트 23.08.21 15:47l


길상사 일주문. 길상사는 신도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길상사 일주문. 길상사는 신도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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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에 삼각산 길상사가 있다. '맑고 향기롭게' 근본 도량이다. '맑음은 개인의 청정을, 향기로움은 그 청정의 메아리'를 뜻한다고 한다.

서울에 올 일이 있을 때 몇 번 길상사를 찾은 적 있다. 얼굴을 달리하며 피어나는 꽃들과 소박하고 깨끗한 분위기는 잠시 쉬어가기에 참 좋은 곳이다. 도심 속 사찰 길상사는 파란 하늘 문이라도 열어놓은 듯 숲속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흐르는 개울물에 마음도 씻기는 듯 차분해진다. 지난 16일 이 곳을 찾았다. 

일주문에 들어서며 합장하는 신도들, 그 모습이 경건하다. '정랑(淨廊)'이라는 화장실 이름 또한 이색적이다. 사찰에선 해우소라 하여 근심을 덜어낸다는데, 깨끗한 복도라는 뜻의 정랑이라 한다. 공중화장실인데도 실내화로 갈아신고 들어간다.
 
길상사에서는 백중 49재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  길상사에서는 백중 49재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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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수), 길상사에선 마침 백중 49재 중 5재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질서 있게 매달린 하얀 연등은 하늘에 수국이 피어 있는 듯싶다. 망자의 극락왕생을 비는 염원을 담은 꽃등이 아름답다.

주지 스님의 낭랑한 축원에 잠시 귀 기울여본다

"자비하신 부처님, 선망하신 부모님 형제자매 일체 인연 있는 영가들이 고통 없는 극락세계에서 왕생하도록 하옵소서."

법당 앞 커다란 화분에 홍련이 예쁘게 피었다. 흰 연등에 붉은 연꽃이 한폭의 그림이 되어 녹음 가득한 도량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소담한 연꽃을 보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야기가 많은 길상사​​
 
길상사 팔작지붕의 멋들어진 범종각
▲  길상사 팔작지붕의 멋들어진 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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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의 싱그러운 여름. 도심 한복판 짙은 녹음은 아름다운 정원이 정원을 이루었다. 여기저기 둘러볼수록 맑고 기품있는 분위기가 특별하다.

길상사는 오랜 역사와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사찰이 아니다. 웅장함이나 화려함과도 거리가 멀다. 하지만 길상사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주 길상화 보살의 공덕비. 길상화는 김영한의 법명이다.
▲  시주 길상화 보살의 공덕비. 길상화는 김영한의 법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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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화 보살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
▲  길상화 보살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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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사이 고풍스러운 다리를 건너자 조그마한 사당(祠堂)이 보인다. 사당 앞에는 공덕비 하나가 세워져 있다. 시주 길상화 보살인 김영한의 공덕비이다.

길상화는 김영한의 법명으로 오늘의 길상사를 있게 인물이다. 김영한과 길상사와는 어떤 인연이 있는 걸까? 사실 길상사는 처음부터 절이 있던 터가 아니고, 과거 김영한이 운영하던 대원각이 있던 자리로 알려져있다.

김영한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 보통사람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7000여 평에 40여 동 대원각을 법정 스님께 기부하였다.

처음 그녀가 대원각을 부처님께 바치겠다고 하자 법정은 "나는 주지(스님)를 해본 적도 없고, 큰일을 할 인물도 못 된다"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한 사람은 10년을 부탁하고, 한 사람은 10년을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다.

진심이 통했을까? 법정 스님은 주지를 맡지 않고, 승보사찰 송광사의 말사(소속 절)가 되어 길상사는 1997년 시작됐다. 대원각은 당시 100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법정의 무소유 철학과 이를 실천한 김영한의 통 큰 기부는 세간의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김영한은 '시인의 시인'이라고 하는 백석과의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이루지 못한 사랑은 백석이 남긴 사랑의 시로도 태어나 공덕비 옆에 쓰여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백석의 시구 일부를 옮겨 본다.
 
눈은 푹푹 나리고 /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김영한이 그 큰 돈을 기부했을 때 "아깝지 않느냐"고 여러 사람들이 물었으나, 그녀가 한 말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케 했다. 보살 김영한은 당시 "1000억 원이라고 하는 돈은, 그 사람(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답했다 한다.

길상사에 깃든 법정 스님의 숨결

조금 비탈진 곳에 진영각이 나타난다. 진영각은 법정 스님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진영각 내부에 스님의 영정과 스님이 남긴 수많은 저서와 평소 쓰던 검소하고 소박한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누더기처럼 해진 법복은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길상사에 있는 진영각. 법정 스님의 진영을 모시고 저서 및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  길상사에 있는 진영각. 법정 스님의 진영을 모시고 저서 및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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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체취가 남아있는 의자
▲  법정스님의 체취가 남아있는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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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각 뜰 한쪽에 법정 스님 유골이 묻혀있다. 어떤 사람은 손을 모아 합장을 한다. 건물 한 귀퉁이에 낡은 의자가 눈에 띈다. 예사롭지가 않다. 스님이 손수 통나무를 잘라 만들었다고 한다. 의자에서 아련한 스님의 체취마저 느껴진다.

군데군데 작은 오두막 같은 집들이 여기저기 있다. 수행 정진하는 스님들 처소라고 한다. 발소리를 낮춘다. 설법전 앞 관음보살 조각상이 인상적이다. 찬찬히 보니 성모님의 얼굴을 한 불상이다. 종교 간 화해의 염원이 담겼다고 한다.
 
길상사 관음보살상. 종교간 화합의 염원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  길상사 관음보살상. 종교간 화합의 염원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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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석탑. 탑돌이를 하는 신도들이 눈에 띄었다.
▲  길상사 석탑. 탑돌이를 하는 신도들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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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모퉁이에는 7층 석탑 하나가 서 있다. 무소유를 실천한 길상화 보살과 법정 스님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기는데, 여기저기 풀꽃들이 예쁘게 고개를 내밀었다. 큰 화분에 핀 부레옥잠, 수행 스님이 거처하는 집 담엔 능소화가 피었다. 점심 공양을 하기 위해 들린 선열당 작은 연못에 핀 수련도 참 이쁘다. ​

비빔밥과 시원한 미역 냉국으로 점심 공양을 마치고 일주문을 나선다. 매미들은 진한 녹음이 우거진 숲속에서 합창하며 막바지 더위를 토해 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in>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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