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후원하기 나의후원

보도

    • 10-03-16

    맑은 눈빛 속 엄정함에 셔터 누를 때마다 긴장 -이종승 (동아일보 3.13)-

본문

▼맑은 눈빛 속 엄정함에 셔터 누를 때마다 긴장▼

■ 6년간 렌즈에 담은 이종승 기자


법정 스님이 2009년 2월 길상사에서 행전을 묶고 있다. 정신을 집중했기 때문인지 입을 벌린 스님의 모습이 이채롭다. 기자가 인상 깊게 느꼈던 장면 중 하나다. 이종승 기자


기자는 2004년부터 6년간 길상사와 법정 스님을 카메라에 담아 왔다. 애초에 불교 사진을 찍겠다고 마음먹었던 게 길상사를 촬영하고, 나아가 법정 스님을 가까이서 찍는 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스님을 뵐수록 인간의 정취가 풍겨나는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이는 스님을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스님을 만나면 ‘수행자 안에 있는 인간’이 보였고, 그 덕분에 스님과 나의 거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4년 동안은 거의 매일 출근 전에 길상사에 갔다. 새벽에도 가고 아침에도 갔다. 길상사 전 주지였던 덕조 스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는 기자를 보고 한결같다는 뜻으로 일여(一如)라는 법명을 줬다.


법정 스님을 자주 뵐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친견만 해도 영광이었지만, 스님을 뵙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조금씩 가까이 갈 수 있었다. 200mm 망원렌즈로만 찍다가 어느 날부터 코앞에서 찍게 됐지만 바로 앞에 다가가는 게 쉽지 않았다.





길상사에서 찍은 사진을 모아 2007년 9월 6일 일본 도쿄 올림푸스 갤러리에서 사진전을 연 이종승 기자.

2004년 12월 중순 스님께서 길상사 경전반 신도에게 강의할 때 ‘몇 번 찍었으니 더 앞으로 가서 찍어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강단 앞까지 갔다가 “어이… 여기까지 나온 걸 보니까 이 자리가 탐나는 모양이지” 하시는 바람에 신도들은 웃었지만 기자는 계면쩍었다. 이후에도 이런저런 일로 ‘비바람 불고 눈보라 친 뒤’ 스님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게 되자 기자는 스님과 어느 정도 교감을 나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의 눈은 맑음의 표시였지만 그 속에는 세상을 직시하는 엄정함도 있었다. 셔터 누르기에 열중한 내게 그 눈빛을 보낼 때 ‘이제 됐으니 그만’이라는 표시로도 전해왔다. 그 눈빛이 언제 올지 몰랐기에 기자는 카메라를 들 때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정함은 행전(行纏·한복 바지를 입은 뒤 무릎 아래부터 발목에 이르는 부분을 덮는 각반의 일종)에서도 나타났다. 스님은 평소 검은 삼베 행전을 차고 다니셨는데 그것은 언제나 빳빳했다. 스님은 설법을 위해 행지실에서 극락전으로 이어지는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도 행전을 살피셨다. 이런 모습을 찍을 때 스님을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스님 글이 왜 맑은지 느낄 수 있었다.


입적 일주일 전 문병 간 자리에서 스님 손을 한참이나 잡았다. 스님의 무소유를 세상에 알린 손을 잡으며 기자도 그 맑음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었다.


오늘이면 스님의 육신은 구름처럼 사라질 것이다. 스님과의 짧은 만남이 아쉽다. 스님의 글과 스님을 찍은 사진이 위안이 될 것이다. 길상사의 사계를 담은 사진으로 책을 냈고 일본 도쿄에서 전시를 열었던 것도 기쁨이었다. 하지만 “일여. 신문사는 어떤가”라고 무뚝뚝하지만 정감 있게 물어오는 스님의 체취를 더는 이생에서 만날 수 없으니 “죽음은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스님의 말씀을 곱씹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