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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3-16

    법정스님, 불 들어갑니다! -김선우 시인(경향신문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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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법정스님, 불 들어갑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그 순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회자정리의 인연이니 울면서 보내드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그랬다. 법정 스님의 법구가 불길에 휩싸이는 순간, 아프다…아프다…, 우리네 산천이 훌쩍훌쩍 울고 있다는 느낌에 사무쳤다. ‘이제 이 공간과 시간을 떠나야겠다’ 하시며 스스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마지막 순간에 ‘아파, 아파…’ 하셨다는, 스님의 호소가 어떤 도통한 언사보다 나를 흔들었다. ‘아프다’는 말. 떠나야 할 시간임을 명철한 정신으로 인식하면서도 육신의 고통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탄식. 그래, 인간은 자연인 거다. 아프면 아프다고 호소해야 하는 자연인 거다. 스님의 목소리가 다비 불꽃으로 타탁, 튀었다.


스님을 보내며 운 것이 스님을 사랑했던 사람들만이 아니었으리라. 아파요…아파요…, 무시무시한 속도로 파헤쳐지며 신음하는 이 땅의 강들, 숲들, 망가져가는 우리 생명의 젖줄들의 한숨소리를 자신의 아픔처럼 듣고 안타까워하던 스님이셨으니, 다비 불꽃 속에서 훌쩍이며 울고 있는 강과 숲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나의 환영만은 아니었으리.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고 언젠가 시에 쓴 적이 있다. 비록 내 손에 의한 것은 아닐지라도, 곡선의 강을 들쑤시고 콘크리트를 쳐 발라 직선의 보를 만들고 잔인하게 생명의 숨결을 끊어놓는, 그 모든 일들이 자행된 시대에 두 눈 멀쩡히 뜨고 그것을 지켜보기만 한 자의 죄가 미래 세대에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정치 경제가 과도하게 유착한 물신의 권력에 의해 미쳐가지만, 다행히 우리 사회엔 불의한 탐욕을 경계하고 성찰하는 종교계의 스승들과 도반들이 계시다. 만물 속에서 ‘불성’을 깨우는 ‘생명 살림’의 철학을 중생 속에 구현해온 불교계의 오랜 노력이 있고, 생명 창조의 질서를 훼손하려는 오만한 권력에 경종을 울리며 최근 1100여명의 천주교 사제들이 ‘4대강 사업 당장 중지하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러 사정으로 암담한 중에도 깨어있는 소수의 개신교 목회자들이 계시고, 원불교의 생명사랑이 있다.


어려울 때마다 우리의 절망감에 손 내밀어 다시금 생명의 감각을 회복하게 하는 종교계 열린 스승들께 감사드린다. 그 손을 잡고 오늘 이 막막한 시대의 한 시민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작은 몸짓일지라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하루에 한 가지씩! 하루에 한 사람씩! 우리의 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강이 어떻게 왜 지켜져야 하는지 이야기하리라. 날마다 노래하리라. 우주 만물, 그 모든 생명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강으로 순례를 떠나고, 4대강 저지 서명을 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에 접속하고,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후보들의 공약을 낱낱이 살피고, 물으리라. 당신은 생명의 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생명에게 친절하셔야 합니다. 사랑하지 않고서 무엇을 살릴 수 있나요.” 입던 승복 그대로 가사 한 장 덮고 꽃잎처럼 가신 법정 스님을 보내며 문득 떠오르는 문장들을 적는다. “아쉬운 듯 모자라게 사십시오. 너무 많이 가지고 살려고 아등바등하지 마세요.” 아름다운 스승들을 곁에 두고도 우리는 왜 깨우치지 못하는가. 생명의 젖줄인 강에 감동할 줄도 모르고 ‘아프다’는 말도 들을 줄 모르면서 ‘살리기’라는 거짓된 말로 ‘죽이기’하는 모든 탐심의 그물들이여. 불도저들이여.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권력도 조만간 끝이 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왜 모르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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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