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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3-16

    법정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 한명숙 전 국무총리

본문

한명숙의 세상읽기

법정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3월의 하얀 눈이 봄볕에 녹고 있던 그 날,

제 육신이 법정에 매여 있던 그 시간,

스님께선 무소유의 淨土로 떠나셨습니다.



배웅도 못해드린 것이 못내 죄스러워

뒤늦게 이런 글이라도 올리면, 마음의 짐이라도 좀 덜어질까 싶었습니다.



탐욕과 거짓에 물든 권력이 사람들의 삶을 거침없이 유린하는 이 땅엔 저희들만 남았습니다. 이제 어떤 스승에게 청빈과 상생의 지혜를 구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돌아보니 스님을 처음 뵈었던 것이 1970년대 초, 강원용 목사님과 함께 하셨던 종교간 대화의 자리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스님과 목사님은 종교를 넘나드는 소통의 장을 만들고 싶어 하셨고, 마침내 한국 최초로 ‘6개 종교 지도자’들의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기도 하였습니다.



스님께선 크리스찬 아카데미의 종교간 대화에 어느 분보다 열심이셨습니다. “사람을 갈라놓는 종교는 좋은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종교가 아니다.” 스님의 말씀입니다.



스님께선 속세의 불의에는 두 눈을 부릅뜨셨습니다. 각계 인사 일흔 한 분이 참여했던 ‘민주회복국민선언’에 불교계에선 유일하게 서명하셨습니다. 함석헌, 장준하 선생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과 유신 철폐운동을 이끌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던 스님께서 ‘인혁당 사건’으로 8명이 사형을 받은 뒤 산으로 떠나셨습니다. "박해를 받으니 증오심이 생긴다. 증오심은 마음의 독이다.” 사람을 증오하지 않기 위해 은둔하신 스님을 뵈러 송광사를 찾았던 기억이 지금 생각납니다.



송광사 산길을 따라 걷다보니 허름하고 조촐한 암자 한 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스님께선 바람소리 청정한 그 곳에서 손수 밥을 지어주셨습니다. 그러던 차에 밖에서 느닷없이 “어처구니가 없네”라고 하는 말이 들렸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하던 저희들 에게, “어처구니는 맷돌의 손잡이다.” 라고 일러주셨습니다.

아! 그래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이 나왔구나....



‘어처구니’의 의미에는 ‘상상 밖의 큰 사람’이라는 뜻도 담겨 있음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스님께선 이 시대 이 나라의 ‘어처구니’이십니다. 어처구니를 잃은 중생들이 스님의 법체를 따라 송광사로 운집해 눈물짓고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스님을 이승으로 다시 모시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속인의 욕심일 뿐이겠지요.

떠나신 자리가 너무나 크고 쓸쓸합니다. 혹시라도 누가 될까 병문안도 못 드린 채 스님을 보내드린 제 처지가 한없이 서글픕니다.



스님,

진실이 거짓의 사슬에서 자유롭게 풀려나는 날, 송광사 뒷산 불일암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맑은 바람 소리와 개울물 소리로 맞아주십시오. 향기로운 가르침으로 이 어처구니없는 세상의 탐욕과 증오를 말끔하게 씻어주십시오.



스님의 극락왕생을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2010년 3월 14일

한명숙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