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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3-16

    법정 스님을 기리며 / 수경 스님 (한겨레신문 3.1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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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 스님 불교환경연대 대표
 




봄이 오는 한강 가에서 법정 스님의 원적 소식을 들었습니다. 강물도 애통해하는 듯합니다. 얼음 풀린 강물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도 탁한 물입니다. 4대강 개발의 포클레인 삽날과 굉음은 마음속 통곡마저 삼켜버립니다.


흐린 강물을 바라보며 ‘중노릇’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새겨 봅니다. 법정 스님의 생전 목소리가 살아옵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생명은 기적이며 축복입니다.” “살아있는 강은 자연스럽게 흘러야 합니다. 물줄기를 직선으로 만들고 웅덩이를 파고, 강가를 콘크리트로 막으면 살아있는 강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신륵사 옆 한강 가에 조그마한 법당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여강선원’입니다. ‘강처럼 사는 집’이라는 뜻을 담아 보았습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아보고자 함입니다. 불자인 저에게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법입니다. ‘법’이란 글자를 보십시오. 물 수(水)에 갈 거(去) 자를 합한 것입니다. ‘물 흐르는 이치’가 바로 법입니다. 생명의 실상과 자연의 본성이 법입니다. 그런데 저는 살과 핏줄과 같은 관계인 대지와 강을 인위적으로 갈라놓는, 대지의 생살을 헤집는 비극의 현장에 와 있습니다. ‘돈’만 된다면 못할 일이 없는 이 막무가내를 무슨 재간으로 막겠습니까만, 함께 아파하며 통곡이라도 하려고 강가로 나왔습니다.


2년 전 어느 봄날 스님은 길상사에서 대중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이 땅은 사람만이 아니라 겉모습만 다른 수많은 생명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어서 생태계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바른 삶의 길입니다. 현 정부의 강 살리기는 방법과 내용이 바르지 못합니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생관계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불자로서, 더욱이 비구로서 인간의 탐욕 때문에 곤경에 빠진 생명들과 아픔을 함께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길을 가던 몇 년 전 어느 날 스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어깨를 다독이며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이게 중노릇입니다. 이 길이 부처님의 길입니다. 현재 한국 불교가 비불교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데, 이건 아닙니다. 불살생의 정신으로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데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그 길을 찾아서 강가로 나왔습니다. 제대로 된 중노릇 흉내라도 내보려고 말입니다. 적어도 염치는 알고 살려고 말입니다.


법정 스님!


내일 저는 여강선원에서 스님을 위해 기도를 하겠습니다. 애도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원하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당신은 ‘청빈’과 ‘무소유’의 정신과는 반대로 내달리는 시대의 미망과 탐욕 앞에서 사라져가는 온갖 생명을 애도하느라 차마 눈을 감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당신을 위한 진정한 애도는 당신의 뜻을 기리는 일일 것입니다. 사라져가는 생명과 함께 눈물 흘리는 일일 것입니다.


법정 스님!


당신의 법체가 흙으로, 물로, 불로, 바람으로 돌아가는 날 저는 여강선원의 부처님께 고할 것입니다. 육신을 벗은 법정 스님이 이곳에 오셨노라고, 우리와 함께 여리고 약한 생명을 위한 정진에 들어갈 것이라고 고할 것입니다.


법정 스님!


생전에 제게 말씀하셨지요. ‘온 생명을 사랑하고, 모두를 살리는 길’이 불교가 나아갈 길이라고요. 저는 여강선원에서 당신의 그 뜻을 기릴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우리에게 수많은 아름다운 글을 남기셨습니다만, 못다 한 문장이 있을 것입니다. 이 땅이 진정 맑고 향기로워지는 것을 당신의 글로 남기지 못한 것이겠지요. 당신의 마지막 문장을 우리들이 생명 사랑으로 회향할 것입니다. 스님, 잘 가십시오.



수경 스님 불교환경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