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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3-05-31

    법정 스님 입적(入籍) - 한평생 무소유만 소유했던 불교계의 외골수 - 201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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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입적(入籍)

한평생 무소유만 소유했던 불교계의 외골수

강인해 

[독서신문] 강인해 기자 = “여기 삶이라는 거대한 나무가 있다. 이 나무 아래 무수히 많은 존재들이 왔다가 떠난다. 때로는 미물의 몸으로, 때로는 인간의 몸으로, 여자와 남자의 몸으로, 그렇게 몸을 바꿔 가며 이 삶이라는 나무 아래 앉았다가 간다. 이 나무 아래서 무엇을 깨닫고 가는가. 당신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자각하고, 어떤 깨달음을 이루는가이다.”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중에서



■무소유 소유한 채 한 줌의 재로




▲ 사진 출처: 길상사 홈페이지 © 독서신문

지난 11일 오후 11시 51분께 『무소유』의 저자 법정 스님이 스스로 창건한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55세, 세수 78세. 2007년부터 폐암으로 투병, 작년 말에는 제주도에서 요양했으나 올해 들어 병세가 악화되자 병원에 입원했고, 입적 직전인 11일 길상사로 옮겨져 편안히 숨을 거뒀다.


그는 입적 전 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고 유언하며 한결같은 무소유의 정신을 생의 마지막에서도 강조했다.


이렇듯 고인은 무소유를 실천한 한국의 정신적 거봉(巨峰)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976년 4월 자신의 대표적인 산문집인 『무소유』를 펴내 종교인을 떠나 작가로서 이름을 알린 것이 계기가 됐다. 『무소유』는 그 이후로도 불교적 가르침을 담은 산문집을 잇달아 발간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머리 깎으니 훨훨 날아갈 것 같다

법정 스님의 본명은 박재철. 1932년 10월 8일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난 그는 1956년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3년을 수료한 뒤, 같은 해 통영 미래사(彌來寺)에서 당대의 고승인 효봉(曉峰)을 은사로 출가했다.


당시 서울의 선학원에서 효봉 스님과 대화를 나눈 뒤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머리를 깎았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스님은 그 순간을 다음과 같이 소회한다. “삭발하고 먹물 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나는 그길로 밖에 나가 종로통을 한 바퀴 돌았다.”


이후 지리산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 여러 선원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 선(禪)을 수련하기 위해 중들이 일정 기간 동안 한 곳에 들어앉아 수련하는 행위)를 수행했고, <불교신문>에 몸담기도 했다. 특히, 1975년 10월에는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청빈한 삶을 실천하면서 도(道)를 득했다.



부터는 순수 시민운동 단체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끄는 한편, 1996년에는 서울 도심의 대원각을 시주받아 이듬해 길상사로 고치고 회주로 있었다. 2003년 12월 회주직에서 물러났으며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직접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면서 무소유의 삶을 살아왔다.


■종교인이자 스타 작가의 인생을 걷다

법정 스님은 다작(多作)을 한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오른 종교인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인생의 참 진리를 깨닫게 하는 수필과 에세이집이 대다수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스님은 공저와 역저를 포함해 약 50종의 책을 펴냈다.




▲ 사진 출처: 길상사 홈페이지 캡처 © 독서신문




그 중 대중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은 『무소유』로 난을 키우던 스님이 난초에 자꾸 집착하자 난초와 같이 말없는 친구에게 난을 선물함으로써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경험을 기록한 에세이다. 그는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를 깨달았고 이때부터 하루에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지금까지 약 340만부가 팔렸고,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아무것도 갖지 않았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가지게 된다는 무소유의 역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법정 스님은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오두막 편지』, 『버리고 떠나기』, 『일기일회』 등을 저술하며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행복에 대해 논했다.


■겁쟁이들만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 『무소유』 ©독서신문

그가 입적 직전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을 남긴 것처럼, 그의 무소유는 결국 물질적 집착을 넘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는 넓고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그는 평소 법문을 통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정신을 바짝 차리면서 순간순간을 살아가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법문이나 책을 통해서 돌려 말하기 보다는 직접적인 표현으로 문하과 신도들에게 정확하고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삶과 죽음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죽음은 삶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죽음을 기분 나쁘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열매에 씨앗이 박혀 있듯이, 삶 속에는 죽음이 씨앗처럼 박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자각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삶을 빛내기 위해서 죽음도 자각하라는 것입니다. 그 뒷면인 그늘도 자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늘이 없는 물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삶의 그늘은 죽음입니다.”



(1992년 8월 28일 약수암 초청법회)



스님은 죽음은 삶을 떠받쳐 주는 역할을 하는데 지혜로운 사람은 그늘인 죽음보다도 삶에 집중해 순간순간을 알차게 살려고 노력한다면서 결국 겁쟁이들만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그의 말처럼 치열하게 삶과 부딪혀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히 죽음에 대해 생각할 여지가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실천해 왔기 때문에 법정 스님은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에 시간과 공간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었다.


“인간의 역사는 소유사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무소유』 중에서


종이 한 장, 휴지 한 장도 허투루 쓰지 않았던 법정 스님이 새로운 ‘꽃’으로 태어나기 위해 잠시 여행을 떠났다.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들판의 꽃처럼 다시 무수한 꽃 중의 하나로 다시 태어날 것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이제 남은 우리에게는 지금 무엇을 자각하고 어떤 깨달음을 얻으며 살아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숙제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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