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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5-25

    法頂 마침내 열반에 들다 - 박희진 (시인) -

본문

법정法頂 마침내 열반에 들다



1


법정이 폐암으로 투병중이라는


소식은 이미 들은 바 있었지만,


하루는 법정의 입적 소식이


티브이 화면에 벼락처럼 떨어졌다.


(올 것은 기어이 오고야 마는구나.)


세수 78세


법랍 55세


그의 두상이 그렇게 클 줄이야.


그의 이목구비 굴곡이 뚜렷한


심산 유곡 같고


마른 이끼 냄새가 났다.


이마의 주름에선


졸졸 시냇물 소리가 들렸다.




2


나 숨지거든


입은 옷 그대로 불 속에 넣으시오.


다비식은 될수록 간소하게.


만장도 헌화도


독경도 마시오.


습골할 때에도


사리는 찾지 말고.




3


송광사 다비장에 전국에서


만 오천 명의 추모객이 운집했다.


그야말로 인파가 질서정연하게


그냥 묵묵히 지켜보는 가운데


(정말 거기엔 만장 하나


헌화 하나 없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장작에 드디어


거화의 때가 되자


불을 든 스님이 낭랑한 목소리로


스님, 불 들어갑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곁에서 법정의 큰 사진 액자를 들고 있던


젊은 스님의 두 뺨에선


순간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4


법정의 평생 화두,


'나란 무엇인가?'


내게서 내 것 아닌 모든 것을 떼어 내버리자.


오직 나의 진면목만이


삼라만상의 본질과 소통하는


대자유를 누릴 수 있으리.


홀로 있을 때나 더불어 있을 때나


진정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


그것이 '무소유'다.


소유는 나를 얽매이게 하고 눈 멀게 할 뿐.


허영과 가식으로 비대해진 자신을


가소롭게도 부자인 양 착각하게 할 뿐.


하여 그는 마침내 매미가 껍질 벗듯


그의 정든 보금자리, 불일암을 벗어났다.


손 때 묻은 책들과 집필에도 지치면


귀 기울이던 음악과도 헤어지고,


수도는 커녕 전기도 없는


강원도 산골 중의 산골로 들어갔다.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본향을 찾아,


무명無名을 찾아, 청빈淸貧을 찾아.



「혼자 사는 즐거움」과


「오두막 편지」등은 거기서 나왔던 것.




5


만년의 법정에게


뜻밖의 이변異變,


아니, 실은 은연중 준비되어 왔던


축복의 손길이 뻗쳐왔다.



어느 보살이 자기의 전재산인


현재의 길상사 부지와 건물을


법정 스님에게 기꺼이 헌정한 것.


스님의 고사를 끝내 물리치며


보살은 말했다. 「불공을 마다하는


부처님도 계시나요?」



하여 법정은 일년에 두세 번


강원도 산골에서 서울 성북동


길상사 법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법문을 경청하러 모여든 불자들은


수천을 헤아렸고


경건, 고요, 희열로 가득찬


법회는 축제의 전날 밤 같았다.



법회가 끝나면 이내 강원도로


돌아간 법정.


올 때나 갈 때나 스님은 여일했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떠났다.




6


보라, 아직도


활활 타오르는 다비의 불길을.


그 순수하고 치열한 불길 속에


한 송이 선홍의 연꽃이 피어남을!


맑고 향기롭게, 맑고 향기롭게-


그 연꽃은 언제까지나 시들지 않으리.



2010.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