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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4-16

    얼음알보다 청아한 법정스님 영전에 -유안진(서울신문 3.12)

본문

[법정스님 입적]

얼음알보다 청아한 법정스님 영전에



시인 유안진

지금 저는 성당에서 묵주기도 중에 큰스님의 열반소식을 듣습니다.

갑자기 마른 풀 향기 전해지며, 큰스님은 깡마른 모습으로 눈앞 환히 마주 서 계십니다.

먹물장삼 딱 한번만 스친 듯이, 無所有의 향기는 백설의 겨울山寺 한 채이십니다.


같은 시대, 같은 하늘을 이고, 같은 땅에 살면서도, 큰스님과 저는 하늘과 땅바닥의 차이였지만, 마주치지 않아도 너무 자주 만나 뵈었습니다.

공중해우소도 가리지 않고 무소유의 행복을 일러주시었습니다.


쉽고 간결한 몇 말씀에 정신차린 그 날은, 진창 같은 어디에 있어도, 머리카락 날리도록 휘파람을 불고 싶었습니다.


큰스님의 글에서는 늘 산촌을 울리는 일곱 박자의 목탁소리가 낭랑하게 울리었습니다.


한 점 콤마조차도 소리 없이 울림 하여, 깊고도 높은 설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얼음알처럼 청아하게 닦으신 정신의 향기는 한국불교의 더 없는 고아함을 보여주시었습니다.


저의 묵주기도는 저절로 큰스님의 열반을, 카톨릭 말로는 소천(召天)을 위한 눈물이었습니다.


종교의 경계를 넘으신 큰스님과 속인 저는 오늘 열반소식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느 생애 덕업을 쌓아, 한번 더 동시대에 같은 이 땅에 태어나 같은 우리나라 하늘을 이고, 큰스님과 저 유안진 글라라로 다시 만나진다면


거기가 바로 법정 큰스님의 극락이고, 저의 천국인 하늘나라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가슴속에 영롱한 구슬로 남은 설법은, 오는 시대도 한결 밝게 맑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목탁을 잃었으나, 일곱 박자의 목탁소리는 오래오래 메아리 칠 것입니다.


번뇌세상 너머의 영원하고 완전한 평안에 드시옵소서.


<시인 유안진 글라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