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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4-08

    스님! 우리 법정스님! - 최미자 (미국 샌디에고)

본문

<스님! 우리 법정스님!>



샌디에고 저희집 뜰에는 살구꽃이 하나 둘 피어납니다. 예년보다 봄이 좀 더디게 오고 있네요. 세상의 탁함 털어버리고 영혼의 마음을 열어 준엄하게 봄의 소리를 들어보라던 말씀이 그리움 되어 한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구산 방장 선사님을 뵈러 자주 송광사에 드나들 적에 스님께서 불일암자에서 사셨지만 어려워 뵙지 못했답니다. 대신 모든 이웃들이 행복하기를 염원하면서 저술하신 '영혼의 모음'. 1970년대 들어 똑같은 차표를 사도 서서 가야하는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안타까워하며 '서있는 사람들'을 내셨다는 저서를 서서 읽었습니다.


직장인이 되고 드디어 책을 서서 읽게 된 저는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바르게 살아가는 법정스님의 모습이 시원하게 때로는 잔잔하게 뵙는 것처럼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스님과 친구처럼 지내던 대구 관음사의 원명스님께서 '말과 침묵'(1983년)이라는 책을 주셨습니다. 1986년엔 '무소유'(20쇄판)를 읽으며 저는 많이 반성했습니다. 얼마나 이기적인 삶을 그동안 살아왔는지 뒤돌아보았습니다. 불교의 깊은 의미들에 매력을 느끼며 가르쳐준 말씀들을 생활 속에서 하나씩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서점에서 구입한 저서들을 읽으며 제 삶의 고민과 갈등도 풀어나갔습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행위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개인의 생활이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는 화엄경의 해설이며, ‘진리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 던 열반경을 알기 쉽게 풀이해놓은 불교의 금언들이 저의 영혼을 흔들었습니다.


저서들로 유명해져버리신 스님이 사람들로부터 고달프실까봐 고국에 계실적엔 인사드리지 못했답니다. 그렇게 용기 없이 멀리서만 뵙다가 미국에서 드디어 친견을 했습니다. 미국의 법왕사에서 질문하던 저에게 “반야행보살 따님이지요?”라며 점쟁이처럼 단방에 저를 알아보시던 스님. 또 고려사에서 뵙던 짦은 해후의 시간이 전부였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법어를 해주십사하고 비행기 값을 동봉했는데 돈을 돌려보내주시며 다정한 서한으로 저에게 위로해주시던 따스함 잊지 않고 있습니다. 스님의 꼿꼿한 삶처럼 단정한 글씨체로 또박또박 마음이 담긴 두어 통의 서한을 여태 간직하고 있습니다. 몇 해 전 스님을 뵈러 길상사에 갔던 제 딸에게 주신 격려의 말씀도 전해들었습니다. 이제 모두 아쉬운 추억 속으로 들어가 버렸네요. 금년 봄엔 저의 두 번 째 수필집을 들고 고국에 나가 꼭 한 번 뵈려고 했는데요.


언젠가 저의 작은 시주를 ‘맑고향기롭게’의 통장에 넣어주시는 바람에 그때부터 저도 작은 나눔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맑음은 개인의 청정함을, 향기로움은 그 청정함으로 사회적 메아리가 되어 울린다며 함께 잘 살기를 염원하며 설립하신 시민단체. 매달 고국에서 날아오는 작은 책자를 기다리며 죽는 날까지 저도 작은 힘을 보태려고 합니다.


그리고 기억하겠습니다.

판사출신이셨던 효봉스님의 자랑스러운 제자로 바르게 사셨던 분.

허욕 부리지 말고 자기 분수에 맞게 행복하게 살라던 가르침.

손수 청소하며 밥해드시던 부지런한 삶으로 모범을 보여주신 분.

늘 어려운 사람들의 편에서 용기를 불어넣어 주신 분.

마지막 순간의 모습까지 간소함으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신 분.


부디 다음 생애에는 더욱 건강하신 법체를 받으시어 우리 곁에 큰 스승으로 다시 오시옵소서.


재미수필가 대련성 최미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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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디에고에서 길상사로 온 편지글을 워드입력하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