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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4-07

    스님, 죄송합니다 - 윤청광 (법보신문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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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칼럼] 스님, 죄송합니다

기사등록일 [2010년 04월 05일 13:30 월요일]


스님, 스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지 어느덧 3재(齋)가 지났습니다.


관(棺)도 없이, 수의도 없이, 평소에 누우시던 대나무 침상에 붉은 가사 한 장 덮으신 채 다비장의 불꽃 속으로 들어가신 스님의 마지막 모습에 온 국민이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인생이 무엇인지, 무소유가 무엇인지, 저마다 스님의 마지막 가르침을 가슴에 깊이 깊이 새겼습니다.


그런데 스님, 법정 스님. 스님의 49재가 끝나기도 전에 이 추악한 사바세계에서는 돈과 감투와 권력을 더 소유하려는 더러운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스님께 말씀드리기조차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첫 번째 난장판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과 서울 강남 봉은사가 직영사찰 전환을 둘러싸고 정치외압설 공방으로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온 국민의 가슴을 울먹이게 만들었던 스님의 청빈한 삶과 무소유의 가르침에 전 국민적으로 번지고 있던 깊은 추모의 분위기는 저들 권력승들의 힘겨루기 싸움으로 한방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정말 정말 부끄럽고 죄송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스님, 스님께서는 ‘남기는 말’이라는 유서를 통해 스님 책의 ‘절판’을 간절히 부탁하셨습니다. 그런데 스님,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려야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스님 책의 절판을 당부하셨지만 스님의 그 유언은 이미 묵살된 채 서점에는 스님의 책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비난과 질책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어 저희가 감당키 어려울 지경입니다.


스님께서 그토록 믿고 스님의 책에 부착해야 할 인지 관리를 맡겼던 분이 출판사들의 강력한 인지 발급 요청을 거절치 못하고 “법적 책임을 출판사가 지겠다”는 각서를 받고 92만 5천매에 이르는 인지를 출판사 측에 넘겨주었고 출판사들은 “계약기간이 남아 있다”는 점을 내세워 스님의 책을 대량으로 찍어 서점에 공급하게 된 것입니다. 그 가운데 스님의 대표적인 에세이집인 『무소유』 한가지 책만을 발행해 온 ‘범우사’는 2만 매의 인지를 교부받아 확보하였지만 “스님의 유지를 어길 수는 없다”는 윤형두 발행인의 출간 정지 명령으로 더 이상 책을 찍지 않았다고 하니, 그래도 스님의 뜻을 지켜준 출판인이 있었구나 하고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무소유를 말씀하시고 맑은 가난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평생토록 강조하셨지만 우리네 중생들은 그래도 소유하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스님의 책 『무소유』 헌 책 한권이 경매 사이트에서 무려 110만원에 낙찰되고 또 어느 경매 사이트에서는 수십억을 호가하는 광란의 해프닝까지 연출되는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는가 하면 스님의 모든 책이 절판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며칠 동안 스님의 책은 서점에서 완전히 품절되는 소동이 일어나기까지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아무리 무소유를 말씀하셨지만 중생들은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소유하기 위해 소동을 벌이는 지경이었으니, 출판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 출판사 측에서야 이 열광적인 독자들의 요구를 어찌 묵살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결국, 스님의 책들은 다시 서점의 판매대에 올려 지게 되었고, 대부분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올라 있습니다.


스님, 그러나 저희들은 스님의 유지를 어길 수 없어 출판사 측과 끈질긴 협의를 거쳐 한시적으로 출간하고 한시적으로 판매한 뒤 스님의 유지대로 스님의 모든 책을 절판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즉시 절판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 유예기간을 두고 정리한 뒤 절판하면 출판사들의 출판권도 존중하고 스님의 뜻도 받들면서 열화 같은 독자들의 요구에도 부응하는 것이 아닐까 변명하고 싶습니다.


스님, 스님께서는 무소유를 말씀하셨건만 소유욕에 눈이 어두워진 이 사바세계의 어리석은 중생들을 용서하소서.


윤청광 방송작가



1043호 [2010년 04월 05일 1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