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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3-29

    법정 스님과 수박 - 이홍섭 (강원일보 3.29)

본문

[오솔길] 법정 스님과 수박


이홍섭 시인


법정 스님이 입적한 지도 어느덧 여러 날이 지났다. “왜, 법정 스님인가?”라고 물으면 여러 가지 답이 나오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스님이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고자 노력한 삶을 살다 가신 점을 꼽고 싶다.


법정 스님은 이 진흙탕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소유'와 `버리고 떠나기'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셨고, 자신의 삶도 여기에 일치시키고자 정진하셨다. 그 길을 가는 동안 참으로 많은 유혹을 이겨내야 했기에 스스로 `괴팍한 삶'을 선택하셨다. 오죽했으면 유언장에서, 세속의 자식들과 같은 상좌들에게 이르기를, “괴팍한 나의 성품으로 남긴 상처들은 마지막 여행길에 모두 거두어 가려 하니 무심한 강물에 흘려보내주면 고맙겠다”라고 하셨을까.


스님 생전에 한 번 스님을 가까이에서 뵌 적이 있다. 법회가 끝나고 여럿이 모인 공양 자리였는데, 스님의 맑고 형형한 눈빛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 눈빛을 접하자, 스님이 언젠가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며, “나는 아마 전생에도 출가수행자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직관적인 인식만이 아니라 금생에 내가 익히면서 받아들이는 일들로 미루어 능히 짐작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스님이 입적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에게는 한 후배가 오래전에 들려준 스님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오대산 초입에 사는 그 후배는, 어느 무더운 여름 날 진부터미널 근처에서 수박을 안고 있는 스님을 뵈었다고 했다. 수박을 안고 계신 스님이라니!


스님은 아마도 그날 오대산의 산골 오두막으로 가시는 길이었으리라. 날씨가 몹시 무더워 수박이 먹고 싶으셨거나, 아니면 스님을 알아본 어떤 분이 지극정성으로 수박을 보시했을 것이리라. 연유가 어찌 되었건,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나에게는 수박을 안고 계신 스님의 모습이 스님의 일생을 함축해 보여주는 한 상징으로 각인되었다.


혹, 스님은 이 한없이 후덥지근한 사바세계에 수박 한 덩이를 주려고 태어나신 것은 아닐까. 자꾸 욕심 부리며 소유하려고만 들지 말고 마당에 돗자리 하나 깔고 앉아 시원한 수박이나 잘라 먹으라고 말씀하시다 가신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스님의 삶이 더없이 청량하고 큼직한 수박같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