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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3-25

    법정 스님이 소유한 것 -오일종(광주드림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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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소유한 것



2주 연속 송광사 행이다. 법정 스님의 다비식 날 불일암을 못 들른 게 못내 아쉬웠던 터라 토요일 아침 잠을 또 포기했다. 계절적으로도 나들이하기에 좋은 날씨여서 등산도 하고 스님의 향기도 맡아볼 겸 아내와 함께 나섰다. 너무 서둘렀는지 송광사 정문에 이르도록 주변이 한산했다. 1주일 전 법정 스님 마지막 가는 길에 추모객이 인산인해를 이뤘던 모습과 비교됐지만, 조용한 산사의 아침이 그의 숨결을 느끼기엔 그만이었다. 계곡의 물소리도 더욱 선명했다.


불일암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송광사 경내에서 오솔길로 접어들어 얼마 간의 산행을 해야 하는데 그 흔한 표지판 하나 없기 때문이다. 산 속에 갈랫길이 많아 자칫 `삼천포’로 빠지기 쉽다.


“법정 스님이 번거로워 하셨는지 표지판 같은 것은 없어요. 가다 보면 중간 쯤에 이상하게 생긴 푯말은 있을 겁니다.”


매표소 안내원의 말 대로 푯말 하나가 있긴 했다. 글자라곤 `ㅂ’자 하나 달랑 새겨져 있고 연꽃이 그 것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었다. `ㅂ’은 `불일암’의 첫 글자를, 연꽃 문양은 암자를 상징하는 듯했다. 푯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오르기를 또 얼마, 이번엔 대나무 산문(山門)과 만났다. `정진중입니다. 출입을 삼가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만 보고는 “스님들의 수행 공간이겠거니” 하고 지나쳤다.


아차! 불찰이었다. 30분 걸린다던 불일암은 그로부터 두 시간 넘게 온 산을 헤맸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주변에 진달래가 꽃망울을 곧 터뜨릴 것 같았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더러 못 찾고 내려오는 사람도 있다”는 매표소 안내원의 말이 실감 났다. 결국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오려는 순간, 대나무 산문이 생각났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려오는 길에 마주친 스님에게 물어보니 역시 그 산문이었다. 뛸 듯 기뻤다. `정진중이니 출입을 삼가기 바란다’는 경고 만 믿고 지나쳤던 `순진함’에 쓴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덕에 맑은 공기 마시며 오랜 만에 아내와 오붓한 산행까지 했다 생각하니 불일암의 그 불친절함이 오히려 고마웠다.


17년간 법정스님이 홀로 지냈다는 불일암은 맑았다. 지금은 스님의 영정 사진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무소유’를 집필했던 그 곳이다. 앞 마당엔 스님이 가꾼 채소밭이 있고, 손수 만들었다는 나무 의자도 토방 한 켠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의자에 한 번 앉아 봤다. 스님 말 대로 맑고 향기로워졌다. 스님이 불일암 찾아오는 길 안내에 그토록 인색했던 이유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평생 무소유의 삶을 살아온 그가 지닌 또 하나의 가치, `홀로 살기’를 실천하기 위함이었을 터. 그는 책에서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고 했다.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으려면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하면 그 인생은 추해진다”고도 했다. 그가 불일암에서 17년, 그리고 나머지 여생을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홀로 지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았나 싶다.


이렇듯 지난 2주 동안 필자의 마음은 온통 스님에게 홀렸다. 스님이 쓴 책을 다시 꺼내 읽기도 하고 인터넷에서도 스님과 관련된 뉴스와 정보를 검색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송광사도 두 번 씩이나 찾았다. “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압니다”란 노무현 대통령 추모글에 담긴 뜻이 이해 됐다. 스님에게 마음을 빼앗긴 이가 어디 필자 뿐이겠는가?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스님 입적 이후 추모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수만 명의 추모인파가 스님 떠나는 길을 배웅했던 다비식 이후로도 송광사 방문객은 줄어들 줄 모른다. 강원도 산골 오두막을 향하는 발길도 줄을 잇는다. 스님의 대표작인 `무소유’를 소유하기 위한 경쟁이 과열양상을 띠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인터넷 시장에서 `무소유’에 수십배의 웃돈까지 붙었다. `법정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났던 법정 스님. 그는 정말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니 그가 가진 게 하나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다. 뭇 사람들의 마음을 소유했으니 스님 만한 부자가 또 있을까 싶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파했던 그이지만, 한사코 그에게로 다가서는 사람들의 마음만은 거부하지 못했으리라.


오일종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