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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8-04-21

    법정스님 봄 정기 법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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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한반도 운하 건설 계획, 반드시 막아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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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頂


(스님,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 길상사 어른스님)





그동안 평안들 하셨습니까?


이 몸을 한 70여 년 끌고 다녔더니 부품이 삐걱거려서 공장에 들어가 정비를 좀 하느라고 몇 차례 이 자리를 비웠습니다. 때문에 본의 아니게 많은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봄이 되니까 알레르기성 천식이 저를 또 찾아와서 밤으로 기침을 하게 만듭니다.


오늘도 얘기 도중에 기침을 좀 하더라도 양해해 주시길 미리 말씀 드립니다.




요즘 산하대지에 초록이 물들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무수한 생명들이 꽃을 피우고 잎을 펼쳐내는 이 눈부신 봄날, 여러분과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몹시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 같지만 이는 하나의 기적이고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생명처럼 존귀한 것은 또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개체로 보면 단 하나뿐입니다. 우리가 친지들의 죽음을 두고 슬퍼하는 것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 와서 이와 같은 생명의 존엄성이 크게 손상되고 있습니다. 걸핏하면 어린 생명들을 유괴해다가 폭행을 가하고 살해합니다. 그럴 만한 이유도 없이 무작위로 살해합니다.


생명을 다루는 농경사회에서는 감히 생각도 해볼 수 없던 그런 끔찍한 일들입니다. 씨를 뿌려서 새 움이 돋고, 어린 싹들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안에서는 생명의 소중함이 함께 움텄습니다. 그런데 점점 흙을 멀리하는 생활 즉 도시에서,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에서 살다보니까 사람들의 심성이 점점 메말라가고 인간의 설 자리를 잃게 된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옛날보다 소득도 훨씬 많아졌고 편리하게 살고 있지만 우리의 인성은 먹고 살기 어렵게 그 시절에 비해서 훨씬 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 아닙니까? 육신은 흉기로 살해할 수 있지만 생명의 근원인 영혼은 그 무엇을 가지고도 죽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남을 죽이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죽이는 일입니다.




우리가 몸담아 살아가는 이 세상은 사람들만 사는 곳이 아닙니다. 겉모습은 다를지라도 수많은 생명체들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어울려 함께 삽니다. 균형과 조화로써 생명의 연결 고리인 생태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 근래 와서 이 땅의 생태계가 커다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 어느 한 곳, 성한 곳이 없습니다. 허물고 파헤쳐져 우리 국토가 피를 흘리면서 신음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런 중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 사업으로 은밀히 추진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이 땅의 무수한 생명체를 위협하고 파괴하게 될 끔찍한 재난입니다. 이 문제는 우리에게 당면한 가장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전 오늘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서 이 자리에서 거론하려고 합니다.


우리 국토는 한두 사람의 생각으로 허물고 파괴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은 결코 아닙니다. 어떤 정치권력을 가지고도 이 땅을 만신창이로 만들 수 없습니다. 이 국토는 오랜 역사 속에서 조상 대대로 이어 내려온 우리의 영혼이고 살이고 뼈입니다. 또 우리만 살다가는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까지 물려줄 신성한 땅입니다.


이런 땅에 대운하를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가 우리 국토에 대한 무례이고 모독임을 알아야 됩니다.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이 땅은 무기물 바위나 흙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많은 생명체들이 함께 이 땅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반도 대운하는 물류와 관광을 위해서 건설하자고 합니다. 몇 푼어치 경제논리에 의해서 이 신성한 땅을 유린하려는 것은 대단히 무모하고 망령된 생각입니다.


물류, 물건을 실어 나르기 위해서… 관광, 눈으로 보고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해서 그렇게 거창한 운하 계획을 세운 겁니다.


삼면이 바다이고 고속철도와 고속도로가 수송을 담당하고 있는 현실로 미루어 그것은 결코 타당한 구상이 아닙니다. 서울 부산 사이의 그 넓은 바닷길도 그간 실제로 운항해온 회사가 정부의 보조를 받고도 타산이 맞지 않아 문을 닫았는데 수 조원을 들여 댐을 만들고 다리를 허물고 산에 터널을 뚫어야 하는 운하가 무슨 경제성이 있겠습니까?


운하는 지금 세계적으로 사양 산업입니다.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운하가 물류의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즘은 철도망을 증설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한반도 대운하를 환영하는 측은 운하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해보겠다는 사람들은 결코 아닙니다. 이와 같은 개발 사업으로 땅값이 오르는 것에 관심이 있는 땅 투기꾼들입니다. 벌써부터 운하 예정지 땅값이 지금 치솟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건설 공사에 관심이 있는 일부 건설업자들뿐입니다. 국민들 대다수는 지금 이 일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강은, 살아 있는 강은 이리 구불 저리 구불 구비구비마다 자연스럽게 흘러야 합니다. 강을 직선으로 만들고, 깊은 웅덩이를 파서 물이 흘러가지 못하도록 채워놓고, 강변에 콘크리트 제방을 쌓아놓으면 그것은 살아 있는 강이 아닙니다.


그리고 갈수록 빈번해지는 국지성 호우는 토막 난 각 수로의 범람을 일으켜 홍수 피해를 가중시킬 것이 아주 뻔합니다. 그 좋은 예로 1920년대 미국 플로리다 운하가 완공되자마자 홍수가 범람하여 2000여 명이 떼죽음을 당한 참사가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운하의 위험한 한계성을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운하에는 항상 물을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에 갑작스런 호우로 범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 운하가 가뭄을 막아준다는 말도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항상 일정한 수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빼내어 쓸 수 있는 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대통령 공약사업 홍보물의 그럴 듯한 그림으로 순진한 지역 주민들이 속아서 엉뚱한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개발 욕구에 불을 붙여 국론을 분열시키면서 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지극히 부도덕한 처사입니다.


문경이나 상주가 마치 부산 같은 항구도시로 발전할 거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도 비열한 속임수입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수도권 일부에서 뉴타운이 곧 이루어질 거라고 주민들을 속여서 근소한 표차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도 국민을 기만하는 비열한 짓입니다.


또 청계천과 운하를 비교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은데 이 두 가지는 그 틀이 전혀 다릅니다. 청계천은 기왕에 있었던 개천을 복원하는 것이고 한반도 대운하는 멀쩡한 우리 국토를 허물고 파헤치고 토막내어 만들겠다는 지극히 반자연적인 무모한 계획입니다.


운하를 이용해서 관광지화 할 수 있다는 주장을 세우는 것도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관광객들로부터 점점 발길이 뜸해지고 있는 것은 운하가 없어서가 결코 아닙니다. 불친절과 물가고와 언어의 소통이 제대로 안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관광자원으로 제주도만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정작 제주도에 가보면 음식값을 비롯해서 물가가 너무 비쌉니다. 또 외국 관광객들과 언어가 제대로 소통이 안 되고 불친절하기 때문에 다시 찾고 싶지 않다고들 얘기합니다. 그런데 운하를 통해 관광을 내세우는 것은 전혀 현실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속임수일 뿐입니다. 기왕 있는 활용 못하면서 또 운하를 만들어서 관광자원으로 개발한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일찍이 없었던 이런 무모한 국책사업이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커다란 재앙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국토해양부 둥 관계 기관에서는 내년 4월에 착공해 대통령 임기 안에 이걸 마무리 짓겠다고 합니다. 이 거창한 국책사업을 이런 발상 으로 그렇듯 졸속한 생각으로 하겠다는 것 자체가 국민적인 저항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명심하십시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이런 무모한 일이 우리 곁에서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다면 우리는 이 정권과 함께 우리 국토에 대해서 씻을 수 없는 범죄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무모한 이 한반도 대운하 계획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교수진을 비롯해서 양식 있는 우리 국민들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 여론조사에서도 3분의 2 이상이 반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반도 운하라고 하는 이런 무모한 구상과 계획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사전에 우리가 나서서 막아야 합니다. 그것은 신성한 우리의 의무입니다.


이 땅에서 살다 가신 조상들과 미래의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현재의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한반도 대운하 문제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사안임을 여러분 모두, 깊이깊이 명심하기 바랍니다.




제가 이 육신의 부품을 수리하면서 느낀 소감을 이 자리에서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은 살만큼 살면 누구나 다 늙습니다. 때가 되면 죽음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번에 크게 앓고 나니까 새삼스럽게 둘레의 모든 사람들이 고마웠습니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모든 사물들에게도 새삼스럽게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죽을병이 아니면 앓을 만큼 앓으면 낫을 때가 있습니다. 이번에 치료하면서 구토와 헛구역질이 나와 음식을 도통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거의 50일 동안 단식 상태였습니다. 제 몸을 본, 간호하는 이들이 갈비뼈만 앙상하게 남았다며 부처님 고행상 같다고들 할 정도였습니다. 그 무렵 체중이 50kg 미만이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옛날처럼 다 회복됐습니다.


이번에 크게 앓으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 날 그 날, 하루하루 즐겁게 살자.”


내일은 기약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만나서, 눈부신 봄날 이렇게 마주앉아서 오랜만에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지만 내일 일을 누가 압니까?


그 날,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합니다. 아니 그렇게 살 수 있어야 됩니다. 후회 없이 살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선 내 마음부터 활짝 열 줄을 알아야 합니다. 가장 문제 많은 것이 인간관계 아닙니까? 가족과의, 친지와의, 직장에서의 관계 등등 늘 관계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뻔히 알면서도 실제 잘 안 됩니다. 내 마음을 내가 활짝 열 수 있어야 되는데, 말이 쉽지 그렇게 안 됩니다.


바로 그 때, 한 생각을 돌리십시오.


‘나는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니다. 언젠가는 나도 이 세상을 하직할 거다. 어쩌면 내일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지금 살아 있을 때 내가 나를 비워야 된다. 이웃과의 매듭을 풀어야 된다.’


이런 생각을 철저히 가져야 됩니다. 그럼 저절로 마음의 메아리가 상대방에게 전달돼 가지고 그 쪽에서도 함께 풀리게 됩니다.


우리가 이 좋은 날, 이렇게 절에 와서,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세상을 보다 지혜롭고 너그럽게 살기 위한 길을 찾기 위해서 오신 겁니다. 문제는 내 마음을 내가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세상을 잘 살고 못 사느냐 하는 것은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흔히 절에서 마음을 찾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참선할 때, 염불할 때 마음을 찾으라고 합니다. 눈에 보여야 마음을 찾죠? 지극히 관념적인 소리입니다.


내가 내 마음을 제대로 쓸 줄 알아야 됩니다. 용심(用心)이 바로 그것입니다. 쓸 줄 알 때, 온전하게 쓸 줄 알면 내 마음이 열립니다. 하지만 잘못 쓰면 겹겹으로 닫힙니다. 순간순간, 하루하루 내 마음을 활짝 열고 산다면 둘레의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나를 반깁니다, 또 나를 받아들입니다.


사바세계를 살아가는데 어려운 일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어려운 일이지만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번에 앓으면서 속으로 느낀 것이 왜 내가, 이 나이에 지금 이렇게 중병에 걸려치료를 해야 되는가 곰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모든 일들에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들은 다 앓는데 나만 앓지 않는다면 남의 사정도 모르고 얼마나 오만하겠습니까?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들은 모두 언젠가는 다 앓게 마련입니다. 생노병사가 그것입니다.


“좋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내가 인간적으로나 수행자로서 보다 성숙해지리라.”


이런 생각,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을 하고부터는 투병 중에도 마음의 여유가 생겨났습니다.


달마 스님의 법문에도 나옵니다. 이 자리에서도 제가 몇 번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마음, 마음이여 알 수 없구나.


너그러울 때에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 없으니….”


이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은 우리 본심, 즉 본마음입니다. 하지만 바늘 하나 꽂을 자리 없이 옹색한 것, 뒤틀린 것은 내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빨리 비워야 합니다. 옹색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내가 아닙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비워야 됩니다.


이와 같이 일상생활에서 마음 쓰는 훈련을 해야 됩니다. 참선하고 염불하고 혹은 독경하는 것은 모두 다 마음을 바르게, 온전하게 쓰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정진을 통해서 내가 내 마음을 바르게 활짝 열고 살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밖에 다른 공덕을 따지지 마십시오.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배움입니다. 어제 몰랐던 것을 오늘 배우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거기서 삶의 어떤 묘미 같은 걸 스스로 터득하게 됩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지금 이렇게 순간순간 살고 있다는 것은 제 정신 차리고, 활짝 열린 마음으로 잘 살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특히 한반도 대운하 문제, 깊이깊이 명심하기 바랍니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또 하루하루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 살면서 사는 일 자체가 즐겁고 기뻐야 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이웃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해소될 수 있어야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