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후원하기 나의후원

공지

    • 12-01-10

    법정 스님에 물든 19인의 이야기 - 법정, 나를 물들이다

본문


법정 스님에 물든 19인의 이야기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ㆍ변택주 &‘법정, 나를 물들이다&’


재작년 입적한 법정 스님(사진)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며 자신의 이름으로 나온 모든 책의 절판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2011년부터 법정 스님의 책은 더 이상 서점에서 공식적으로 구할 수 없다.


그러나 혼탁한 시대, 맑고 향기로운 스님의 말씀을 찾는 이는 끊이지 않는다. 열두해 동안 법정 스님의 길상사 법회를 진행한 변택주씨 역시 “스님의 정신이 이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던 차였다. 그렇다면 법정 스님을 만나 그에게 물들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법정, 나를 물들이다>(불광출판사)는 법정 스님과 인연을 맺었던 19명에 대한 기록이자, 스님의 메시지를 향한 우회로다.


1f445c16ba5e50ecff5675cd4f1c2c7e_1669859743_5211.jpg
 


스님, 예술가, 타종교인은 물론 법정 스님의 사촌동생 같이 평범한 사람들도 있다. 천주교 신자들도 많이 따라 &‘천불교 교주&’라고도 불렸던 스님은 종교 사이에 벽을 두지 않았다. 천주교 장익 주교는 “문화, 사회, 역사를 봤을 때 종교 목적이 종단 구성일 수는 없다”는 스님의 말씀을 전한다. “다 조금씩 모자라기 때문에 교회나 절을 찾는 게 아닙니까. 천사는 교회 들어올 자격이 없어요”라는 장 주교의 말에서 저자는 &‘오도자불입(悟道者不入·깨친 자는 들어오지 말라)&’이라는 불국사 현판을 떠올린다. 최종태 조각가가 조성한 길상사 관음상 점안식 날, 스님은 “관세음보살과 성모 마리아는 그 상징성이 같다”고 말했다. 조각가는 “땅에는 경계가 있지만 하늘에는 경계가 없다”고 화답했다.


성철 스님의 상좌인 원택 스님(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은 법정 스님의 &‘집필&’에 얽힌 뒷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메모광이었다. &‘오보일기&’, 즉 다섯 걸음 걷다가 한 번 적었다. 법정 스님 이전 불교 관련 서적은 아무리 훌륭해도 정가를 붙이지 않고 배포했다. 법정 스님은 절 안에서만 돌다가 이내 사라지는 불교 서적을 시중 서점에 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 말을 들은 성철 스님은 “책은 내 돈으로 찍어 나눠주는 거야, 이놈아! 그런데 내 책에다가 정가를 붙여? 이 나쁜 놈!” 하고 퍼부어댔지만, 결국 뜻을 꺾고 정가를 붙였다. 오늘날 여러 큰스님들의 글이 시중에서 널리 읽힐 수 있는 것도 법정 스님의 공로인 셈이다. 스님의 사촌동생 박성직 거사는 스님이 출가한 후 스님 어머니를 20여년간 모셨다. 박 거사는 &‘무표정한 직업인&’이 되길 꺼렸던 법정 스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밝힌다. 스님은 박 거사를 통해 속가에 남겨두고 온 노모에 대한 애틋한 심경을 전했다. 스님 생전 돈 한 푼 도움 받은 적 없는 박 거사는 “한 분이 출가해서 도를 깨치면 몇 대 친·인척까지 그 빛이 미친다”고 했다.


변택주씨는 “스님은 음식에 들어가 맛을 돋우면서 본연의 향을 잃지 않는 생강 같은 존재셨다”며 “지금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였다면, 분명 SNS를 이용해 말씀을 널리 퍼트리셨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