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오늘처럼 오전에 잠시 봄비가 내렸지요. 9인승 카니발에 몸을 싣고 자제정사로 향하는 길에 봄비가 창가에 송글송글 맺혀 오늘 무슨일을 할까 걱정이 되었는데, 부처님은 우리를 그냥 두시지는 않았다. 도착하니 비는 어느새 그치고 일을 하는 일만 남았다. 자제정사 처사님이 하는 말. "처사님은 배도 나오지 않고 날씬해서 삽질을 잘 하시겠어요. 쇠통 푸는데 같이 갑시다." "땅도 진데, 장화도 없이 어떻게 하죠?" "창고에 가면 많으니 골라 신으세요" 창고에 가니 장화가 수십켤레는 될 정도로 많았다. 털털거리는 경운기를 타고 자제정사 입구를 나서는데 느닷없이 비가 내렸다. 그럴줄 알고 미리 준비해간 비옷을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잽싸게 걸쳤다. 비에 젖은 쇠똥냄새가 왜 그리 향기롭던지. 비가 그치고 물을 흠벅 먹은 쇠똥은 잘 익은 풀냄새였다. 코를 대고 끙끙 맡아 보았다. 그래 이 냄새야. 나무 주위를 파고 쇠똥거름을 아주 정성스럽게 넣고는 다시 덮었다. 가는 비가 다시 내렸다. 4분의 처사님들과 힘들게 작업하는데 고등학생 몇명이 거들어 준다. 경우기에 쇠똥을 다시 가져 오는 사이에 이 놈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줌씨라도 불러오라 하니 비가와서 아무도 못나온단다. 이런 이런.... 못 마시는 막걸리 한잔에 타는 목 축이고. 향긋한 쑥 튀김에 배도 든든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했던가? 아줌씨, 여학생들 떼거지(?)로 달라 붙어 벼룩이 눈물만큼 퍼 내는 삽질도 삽질이라고 오후 작업은 금방 끝날 수 있었다. 여고생들 퍼 주는 쇠똥 바가지 날으며 더럽다는 말한마디 없이 내일처럼 열심히 하는 모습보니 정말 아름다웠다. 어느 비구니 스님이 쵸코파이를 들고 오셔서 나누어 주시며 하시는 말씀. "오전에 비가 내려 먼지도 나지않고 정말 날씨한번 좋네요" 하신다. "정말 부처님이 도와 주시는가 봅니다" 내일까지 비가 내린다니 그 나무들 거름발 한번 잘 받겠다. 다음에 가면 더 푸르게 변했을 소나무를 볼 수 있겠지. 법당 오르는 계단 옆에 자그마한 홍매화가 붉게 피어 매화꽃에서 뿜어 나오는 향기와 저 멀리 젖소 무리에서 날아오는 쇠똥냄새가 참 잘 어울(?)렸는데. 그 냄새가 좋아 한참을 서서 맡아 보았지요. 다음에 가면 홍매화는 떨어지고 없을텐데. 그러면 쇠똥도 구수한 냄새가 아닌 구린내가 날텐데..... 그래도 한번 더 맡고 싶네. 전생 어느생에서 나는 소였을까? 그날 나무에 쇠똥거름 주셨던 세분의 처사님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